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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는 왜 '대출 기록'을 목숨처럼 지키는가

문헌정보학의 심장, '지적 자유'와 '프라이버시'

by 김경훈


문헌정보학은 단순히 정보를 효율적으로 분류하고 검색하는 '기술'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 '가치'를 수호하는 전문 직업입니다. 그 가치의 두 기둥이 바로 '지적 자유(Intellectual Freedom)'와 '프라이버시(Privacy)'입니다.


이 두 가치는 왜 문헌정보학의 가장 신성한 원칙으로 여겨질까요?



1. 지적 자유 (Intellectual Freedom): '모든' 생각을 위한 권리


'지적 자유'란, 모든 개인이 사회의 통념이나 타인의 방해 없이 '모든' 관점의 정보와 사상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수용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책'이나 '올바른 정보'를 읽을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 즉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사상을 담은 정보에 접근할 권리까지 포함합니다.


검열(Censorship)과의 싸움: 문헌정보학 전문가의 제1 윤리 강령은 '검열에 대한 저항'입니다. 사서는 개인의 신념이나 사회적 압력(예: 특정 도서의 금지 요구)에 굴복하여 정보를 선별하거나 숨겨서는 안 됩니다.

다양한 관점의 제공: 도서관의 장서(Collection)가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중립'을 지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A라는 주장과 그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B라는 주장을 모두 공평하게 제공하여, 이용자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무입니다.


이 '지적 자유'가 없다면, 이용자는 오직 사회가 '허락하는' 정보만 볼 수 있게 되며, 이는 민주주의와 비판적 사고의 근간을 무너뜨립니다.



2. 프라이버시 (Privacy): '지적 자유'의 방패막


그렇다면 이 '지적 자유'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요? 바로 '프라이버시'를 통해서입니다.


만약 내가 무엇을 읽고, 무엇을 검색하는지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당신은 '불편한' 주제의 책을 빌리거나 '위험한' 키워드를 검색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스스로를 검열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프라이버시의 침해'는 '지적 자유의 종말'로 직결됩니다.


이것이 사서가 이용자의 '정보 이용 기록'을 목숨처럼 지키는 이유입니다.

기록의 삭제: 대부분의 도서관 시스템은 이용자가 책을 '반납하는 즉시' 대출 기록(누가 무엇을 빌렸는지)을 영구적으로 삭제하도록 설계됩니다. 이는 기술적인 실수가 아니라,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철학적 설계입니다.

데이터 최소화 원칙: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이 이용자의 데이터를 '최대한' 수집하여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것과 정반대로, 도서관은 이용자 서비스를 위해 '최소한'의 정보만을 수집하고, 그마저도 목적이 달성되면 즉시 파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감시로부터의 보호: 사서는 법원의 적법한 영장 없이는 정부, 경찰, 심지어 부모에게도 특정인의 대출 기록이나 검색 기록을 제공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거부하도록 훈련받습니다.


정보를 '조직'하는 기술은 AI가 흉내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정보에 접근하는 모든 개인의 '지적 자유'를 보장하고,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사회적, 정치적 압력에 맞서는 것.


이것은 인공지능이 아닌, 확고한 윤리 의식으로 무장한 '문헌정보학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임무입니다. 감시 자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문헌정보학의 이 두 가지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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