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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llP Desk

헬프 데스크 Ep.28

by 김경훈


'죽음'은 무겁다. 그 파동은 축축한 'F 마이너(Fm)'의 저음으로 공간을 짓누른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 무거움은 '소리'가 아니라 '간지럼'으로 온다. 슬퍼해야 할 순간에 웃음을 터트리는 그들은 '악마'가 아니다. 그저 '감각'의 배선이 조금 꼬인, '고장 난 라디오'일뿐이다.


고장 난 라디오는 버리는 게 아니다. '주파수'를 다시 맞추면 된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28쪽 (소아과 임상 편).



에피소드 28. 3억짜리 웃음과 '배꼽'의 주파수



1.


대성그룹 이 회장의 성북동 저택.

장례식은 끝났지만, 집 안을 가득 채운 '죽음'의 냄새는 여전했다.


김경훈의 테슬라 모델 X '검은 침묵'이 저택의 육중한 철문을 통과해 소리 없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후... 분위기 봐라."


조수석에서 내린 황 소장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평소의 '전투복'인 샤넬 트위드 재킷 대신, 예의를 갖춘 블랙 디올(Dior)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디올을 싫어했지만, '상주'들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여성스럽고 순종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비즈니스적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에르메스(Hermès) 버킨 백(가장 비싼 계약용 가방)만큼은 그녀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번들거렸다.


"김 팀장. 실수하면 안 돼. 3억을 물어주느냐, 300억을 버느냐가 걸린 '쇼'야."


"걱정 마시죠, 황 '간호사'님."


김경훈이 로로 피아나(Loro Piana) 블랙 캐시미어 코트(장례식용)를 여미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습관처럼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그의 귀에 꽂힌 JH 오디오(JH Audio) 커스텀 이어폰이, 저택 전체를 휘감고 있는 파동을 '청진'했다.


'... 아이고... 아이고...' (상주들의 곡소리 / Fm)

'... 내 돈... 유산...' (친척들의 탐욕 / G#)

'... 춥다... 추워...' (아직 떠나지 못한 고인의 잔류 사념 / Dm)


집 전체가 거대한 '불협화음'의 오케스트라였다. 하지만 김경훈의 신경을 긁는 것은 그 소리가 아니었다.


"꺄하하하! 으흐흐흑! 아하하하!"


저택 2층 구석방에서 들려오는 찢어질 듯한 아이의 웃음소리.

슬픔이나 기쁨이 아닌, 신경이 곤두선 채 터져 나오는 발작적인 'C#(C-Sharp)' 파동.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비명'이었다.


[팀장님... 저 아이... 냄새가 이상해요. 슬픈 냄새가 나는데... 소리는 웃고 있어요.]

탱고가 에르메스 하네스를 찬 '개'의 모습으로 김경훈의 다리 뒤에 숨었다. 짐승의 본능은 저 웃음소리가 '정상'이 아님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 '오작동'하고 있구나."


김경훈이 벨루티(Berluti) 구두로 저택의 대리석 바닥을 '또각' 밟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가자. '오진(誤診)'을 바로잡으러."



2.


거실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살벌했다.


"저게 사람 새끼야? 할아버지 영정 사진 보고 웃는 게 말이 돼?"

"귀신이 씌어도 단단히 씌었어! 저런 불길한 애한테 유산을 줄 순 없지!"


친척들의 'G#(분노)' 파동이 2층 방문을 향해 맹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압력'에 눌려, 7살 은아의 'C#(웃음)' 파동은 점점 더 히스테릭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잠깐만요."


황 소장이 디올 슈트 차림으로 우아하게, 하지만 에르메스 가방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듯 친척들 앞을 막아섰다.


"저희는 이 회장님 의뢰로 온 '전문가'들입니다. '상속 문제'는 변호사님과 이야기하시고, 저희는 아이 '상태'부터 보겠습니다."


"전문가? 흥, 무당이라도 불렀나?"


"아니요."

김경훈이 선글라스 너머로 친척들을 싸늘하게 일별 했다.


"의사입니다. '영적(Spiritual)' 의사."


그는 친척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 앞에 서자, '웃음소리'는 더욱 처절하게 들려왔다.


"으하하하! (제발 그만...) 꺄하하하! (배꼽이... 배꼽이...)"


김경훈은 문고리를 잡기 전, 잠시 멈췄다.

그의 뇌리에 17살 '충주 기숙사'의 기억이 스쳤다.

'소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벽에 머리를 찧으면서도, 입으로는 비명을 질렀던 자신의 모습.

자신은 '귀'가 아팠지만, 이 아이는 '배'가 아픈 것이다.


'스승'이 그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영원히 그 소음 속에 갇혔을 것이다.


김경훈이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커튼이 모두 처져 있었고, 7살 은아는 침대 구석에 웅크린 채, 자신의 배꼽을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장례식장에서 따라온 하급 영(E-Class)들이 맴돌며 'Fm'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그 파동이 아이의 '촉각'을 건드릴 때마다, 아이는 자지러지듯 웃었다.


"나가! 나가라고! 으하하하!"


"은아야."

김경훈이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마크 레빈슨은 없었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스피커'였다.


'A-440Hz'의 맑고 고요한 '기준음'이 방 안을 채웠다.

주변을 맴돌던 잡귀들의 'Fm' 파동이 순식간에 정화되어 사라졌다.


"......?"


은아의 웃음이 뚝 그쳤다.

간지러움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낯선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코트에 선글라스를 쓴, 수상하지만 무섭지 않은 아저씨.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이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김경훈이 침대 맡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자신의 눈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는 시늉을 했다.)


"나? 나는... 너랑 똑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이야."



3.


"병이요...? 전... 미친 게 아니에요?"

은아가 울먹였다.

"사람들은... 제가 악마래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자꾸 웃음이 나와요... 배가... 배가 너무 간지러워서..."


"알아."

김경훈이 에르메스 실크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나도 그랬거든. 나는 귀가 너무 간지러워서... 세상 모든 소리가 비명처럼 들렸어."


그는 주머니에서 '블레이드(소리굽쇠)'를 꺼냈다.


"은아야. 이건 '소리굽쇠'야. 피아노 칠 때 '도' 소리를 맞추는 도구지."

그가 블레이드를 가볍게 튕겼다.

피이잉—.


"네 배꼽은 지금... 고장 난 라디오처럼 아무 '전파'나 다 잡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의 슬픔, 친척들의 화난 마음... 그게 전부 '간지러움'으로 바뀌어서 들어오는 거지."


"그럼... 어떡해요? 평생 웃어야 해요?"


"아니."

김경훈이 아이의 손을 잡아, 진동하는 소리굽쇠 끝에 갖다 대게 했다.


"느껴지니? 이 떨림."


"네... 징— 해요."


"이건 '기준'이야. 네가 간지러울 때마다, 이 느낌을 기억해."

김경훈이 아이의 손을 아이의 배꼽 위에 얹어주었다.


"이제부터 우린, 네 배꼽에 '스위치'를 달 거야. 밖에서 이상한 신호가 오면, 이 '소리굽쇠'의 느낌을 떠올리면서 스위치를 '탁' 하고 끄는 거지."


이것은 '최면'이자, '태평요술'의 기초인 '기(氣)의 통제'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 것이었다.

17살의 김경훈이 '스승'에게 배웠던 '정적'의 기술.


"자, 다시 해볼까?"


김경훈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거실에서 친척들의 'G#(비난)' 파동이 미약하게 흘러들어왔다.

은아의 몸이 움찔하며, 입꼬리가 다시 경련하듯 올라가려 했다.


"지금이야. 스위치."

김경훈이 아이의 손등을 덮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웃지 마. 그건 '가짜'야. 넌 지금 슬픈 거야. 배꼽이 아니라... 가슴이 아픈 거야."


아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소리굽쇠의 '징—' 하는 진동을 떠올렸다.

간지러움이... 밀려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아왔던 거대한 '먹먹함'이 차올랐다.


"......"

은아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리고 그동안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앙! 할아버지! 할아버지 보고 싶어! 으허엉!"


방 안 가득했던 기괴한 'C#' 웃음소리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슬픈 'F 마이너'의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그것은 '치유'의 통곡이었다.



4.


1층 거실.

아이의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들리자, 친척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이제 우네?"

"악마가 나갔나?"


그때, 김경훈이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로로 피아나 코트에 묻은 아이의 눈물자국을 훈장처럼 달고 있었다.


"황 보."

김경훈이 황 소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 끝났습니다. '환자'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너무 슬퍼서 일시적인 '쇼크'가 왔던 것뿐입니다."


그가 친척들을 향해 선글라스 너머로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아이에게 '악마'니 뭐니 하며 정서적 학대를 한 분들. 제가 '아동학대 방지 위원회'와 '정신과 전문의' 소견서를 첨부해서 법원에 제출하면, 유산 상속은커녕 접근 금지 명령 떨어질 겁니다." (물론 그는 전문의 자격증이 없지만, 그의 '권위'는 진짜였다.)


친척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황 소장이 '자본주의'의 승리를 확신하며 에르메스 가방을 열었다.

"들으셨죠? 회장님."

그녀가 이 회장(상주)에게 다가갔다.

"3억짜리 소송 방어,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김 팀장이 아이의 '평생 주치의'가 되어드리기로 했으니..."


그녀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건 '변호사 수임료'가 아니라 '종합 의료 컨설팅' 비용으로 청구하겠습니다. 우리 아이 '멘탈 케어'가 중요하잖아요?"


이 회장이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3억이 문제겠습니까. 은아만 괜찮다면..."


황 소장이 김경훈에게 윙크를 보냈다.

'300억짜리 고객, 확보했어.'


김경훈은 피식 웃으며 저택을 나왔다.

마당에 세워둔 '검은 침묵' 옆에서 탱고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팀장님! 꼬마 애 안 웃어요 이제? 슬픈 냄새나요.]

"그래. 이제 진짜로 슬퍼할 수 있게 됐어."


김경훈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승'님. 저도... 누군가에게 '방패'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17살의 저에게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때, 그의 주머니 속 폰이 진동했다.

'조 실장'이었다.


[팀장님. '소아과 진료' 끝나셨나요? 이제 진짜 '수술' 들어가셔야죠.]

조 실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뒤로 다급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지금... 'GBI' 본사에서 '제천대성' 바이러스 샘플을 요구하고 있어요. 놈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습니다.]



(에피소드 28.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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