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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llP Desk

헬프 데스크 Ep.30

by 김경훈


가장 치명적인 '해킹'은 방화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믿을 수 있는 포트를 통해 'USB'를 꽂는 것. 그것이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다.


나의 JH 오디오는 완벽한 방화벽이었지만... '물리적'으로 심어진 '노이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0쪽 (보안 취약점 편).



에피소드 30. '트로이 목마'와 청각의 '블루 스크린'



1.


인천공항 주차장 구석, 선팅이 짙게 된 GBI의 검은색 밴 안.

그곳은 '최첨단 기술'과 '삼류 양아치'가 만나는 기이한 '접속(Connection)'의 현장이었다.


"헤이 미스터 차. 당신의 제안, 흥미롭습니다."


GBI 요원이 부서진 PKE 측정기를 내려놓으며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밴 안에는 각종 모니터와 서버 장비들이 윙윙거리는 구동음을 내고 있었지만, 차승목의 'G-Shop' 향수(땀+싸구려 명품 향) 냄새는 그 기계적인 '오존' 냄새를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그치? 내 말이 맞다니까!"

차승목이 베르사체 셔츠 깃을 세우며, 탐욕스럽게 웃었다. 그의 기름진 포마드 머리가 모니터 불빛에 번들거렸다.


"그 '장님 전파사(김경훈)' 놈. 눈이 안 보여. 대신 귀가 엄청 밝지. 그게 놈의 '강점'이자, 유일한 '보안 취약점(Exploit)'이야."


차승목이 가짜 롤렉스를 찬 손으로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너네 기계가 왜 터졌는지 알아? 놈이 소리로 '과부하'를 걸어서 그래. 반대로 생각해 봐. 놈의 귀에다 '쓰레기 데이터'를 왕창 쏟아붓는다면?"


GBI 요원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의 '디지털' 뇌가 차승목의 '아날로그'적 꼼수를 분석했다.

"Input Overload... (입력 과부하). 청각적 'DDoS(디도스)' 공격을 하자는 거군요."


"뭐, 디도스인지 돈가스인지는 모르겠고."

차승목이 손을 내밀었다.

"기계 내놔. 소리 나게 하는 거. 아주 지독하고 시끄러운 걸로. 내가 놈의 사무실에 '설치'해줄게."


요원이 펠리컨 박스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색 장치를 꺼냈다.

"'소닉 재머(Sonic Jammer)'. 특정 주파수의 '백색 소음'을 발생시켜 뇌파를 교란하는 장비입니다. 일반인에겐 그저 '이명' 정도로 들리지만, 청각이 예민한 타깃에게는..."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겠지?"

차승목이 장치를 낚아챘다.


"이게 바로 '협업'이지. 자, 착수금은 달러로 줘."



2.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김경훈은 '롤스로이스'를 타고 퇴근했고, 황 소장은 '3천억' 계약서를 검토하느라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남은 건, '소고기' 과식으로 책상 밑에서 깊은 잠에 빠진 탱고뿐이었다.


... 달칵.


사무실 뒷문(비상구)이 소리 없이 열렸다.

'도둑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인 차승목이 들어왔다. 그의 'G# 삑사리' 파동은 GBI가 준 최신형 '스텔스 슈트(투명 망토 같은 것)' 덕분에 일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으... 재수 없는 냄새."

차승목이 코를 막았다. 사무실에서는 김경훈이 뿌려둔 딥티크 룸 스프레이 향과, 고급 가죽 냄새, 그리고 완벽하게 정돈된 'C 메이저'의 공기가 흘렀다. 자신의 '땀 냄새'와는 상극인, '성공한 자'들의 냄새였다.


[크으... 으음... 소고기...]

탱고가 잠꼬대를 했다. 차승목이 움찔했지만, 개는 깨어な지 않았다.


"좋아. 어디다 박아줄까..."


차승목의 눈이 김경훈의 '성역', 오디오 랙에 머물렀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마크 레빈슨 앰프와, 스탁스 헤드폰, 그리고 JH 오디오 이어폰 케이스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곳.


"장님 주제에, 비싼 건 더럽게 밝혀요."


차승목은 마크 레빈슨 앰프 뒤쪽, 복잡한 케이블이 얽혀 있는 구석에 GBI의 '소닉 재머'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 윙.


아주 미세한, 인간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초고주파 진동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데이터 오염 물질'이었다.

사무실의 맑은 공기에, 보이지 않는 '노이즈'가 잉크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흐흐흐. 내일 아침이면... 네놈 머릿속은 '블루 스크린'이 될 거다."


차승목은 비열한 웃음을 남기고,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탱고는 꿈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고 있었지만, 그 초원의 풀들이 서서히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3.


다음 날 아침.


김경훈이 검은 침묵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는 기분이 꽤 좋았다. 'GBI'와의 기싸움에서 이겼고, 로로 피아나 코트의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그는 습관처럼 오클리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사무실의 '파동'을 체크하기 위해 귀를 열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오늘의 '데이터'는..."


그 순간이었다.


—찌이이이이이익!!!—


"...... 윽!"


김경훈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귀가 아니었다.

뇌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고성능 스피커에 마이크를 갖다 댔을 때 나는 '하울링'처럼, 혹은 수만 개의 라디오 채널이 동시에 켜진 것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노이즈 데이터'가 그의 뇌혈관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팀장님?!"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던 황 소장이 샤넬 머그잔을 떨어뜨리며 달려왔다.

"왜 그래! 갑자기 왜!"


"끄으윽... 소리... 소리가..."


김경훈은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것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디지털 공감각' 인터페이스 자체를 교란시키는 '시스템 에러'였다.


그의 눈앞(시각적 암흑)에 펼쳐지던 '데이터의 흐름'이 깨지기 시작했다.

황 소장의 '걱정(C#)' 파동도, 탱고의 '놀람(Fm)' 파동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지지직거리는 '회색 노이즈'와 '깨진 픽셀'로 변해버렸다.


[경고. 시스템 치명적 오류. 데이터 처리 불가. 강제 종료합니다.]


김경훈의 뇌 속에서 '블루 스크린'이 떴다.

그는 바닥을 짚었다. 벨루티 구두의 감촉도, 바닥의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14살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의 소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장님 전파사' 양반."


깨진 노이즈 너머로, 비열하고 끈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차승목이 거들먹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GBI 요원들이 '포획 장비'를 들고 서 있었다.


"자, 이제 '망치' 맛 좀 볼까?"


김경훈의 '방화벽'이 무너졌다.

헬프 데스크는... '해킹'당했다.



(에피소드 30.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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