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의 가출, 나의 두 번째 탄생기

by 김경훈

시각장애인에게 부모님의 집은 지상낙원, 그 자체다.

가구는 성실한 공무원처럼 자리를 지키고, 냉장고 손잡이와 전자레인지 버튼은 눈 감고도 누를 수 있는 오랜 친구다.

밥은 때맞춰 자동으로 리필된다.

이 완벽하고 안락한 자궁을 굳이 탈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독립이란 이 안락한 자궁을 스스로 깨고 나오는 결단이다.

이는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던 세계 전체를 파괴하고 새로운 삶의 논리를 세우는 혁명이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가 성인이 되어 다시 한번, 훨씬 더 극적인 형태로 찾아오는 순간이다.


독립 첫날,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따뜻한 양수는 사라지고 일상의 모든 자동성이 무력화된다.

야심 차게 밥솥 버튼을 눌렀는데 ‘취사’가 아니라 ‘보온’이었다.

한 시간 뒤, 나는 따뜻한 생쌀을 맛보아야 했다.

세탁기의 울림은 해석 불가능한 외계인의 암호가 되고, 낯선 동네의 마트는 끝없는 미로가 된다.

위엄과 실수를 동시에 품은 숭고하지만 처절한 카오스(Chaos)의 시간이다.


그러나 바로 그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자라난다.

전자레인지에 점자 라벨을 붙이고, 물을 수차례 쏟은 뒤에야 완성된 계란 프라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혼자서 마트를 다녀온 날은 작은 승리감에 취해 한참을 웃게 되고, 택배 상자를 칼 없이 뜯는 기술은 어느새 숙련된 감각이 된다.

이 모든 경험은 실수를 기반으로 학습한 성공의 조각들이며, 그 조각들이 모여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단단한 ‘나’를 만든다.


결국 독립은 자궁을 부수고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 우주는 차갑고, 혼자이며, 무수한 책임이 따라오는 공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은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율하며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타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수한 실패와 성공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되는 공간.

그곳이 바로 진정한 ‘나의 세계’이다.


그러니 당신이 만약 안락한 자궁을 깨고 나온 독립된 존재라면, 이 글은 당신에게 보내는 우렁찬 기립박수다.

짝! 짝! 짝!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질서를 창조해가는 모든 이에게, 이 세계는 더없이 값진 경의의 시선을 보내야 마땅하다.



비하인드 스토리


독립 후 처음으로 보보를 집에 초대한 날.

완벽하게 ‘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직접 끓인 된장국에, 완벽하게 성공한 계란 프라이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녀가 물었다.

“자기야, 물티슈 어디 있어?”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당연히 알지! 저기 세 번째 서랍!”

잠시 후, 그녀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물티슈가 아니라, 내가 숨겨둔 비상용 초코파이 한 박스였다.

그렇다.

나의 우주는 아직, 비상식량의 위치마저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배고픈 우주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된장국 대신 초코파이를 먹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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