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의 사기극: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아니, 마케팅이 영원히!
"나랑 결혼해 줄래?"
근사한 레스토랑,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반지 케이스를 엽니다. 그 안에서 반짝이는 투명한 돌멩이. 여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칩니다.
자, 여기서 질문. 만약 저 남자가 케이스에서 '루비'나 '사파이어'를 꺼냈다면? 아니면 '큐빅'을 꺼냈다면? 분위기 싸해질 겁니다. 등짝 스매싱 안 맞으면 다행이죠.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프러포즈 = 다이아몬드', '결혼 예물 = 다이아몬드'.
그런데 말입니다. 이 공식이 고작 100년도 안 된, 그것도 한 장사꾼 가문이 억지로 주입시킨 '세뇌 교육'의 결과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원래는 흔해 빠진 돌멩이가 어떻게 '사랑의 증표'로 둔갑해서 우리 지갑을 털어가게 됐는지, 그 기막힌 사기극의 현장으로 가봅시다.
1. 사건의 발단: "망했다, 돌멩이가 너무 많이 나와!"
시곗바늘을 1870년대로 돌려봅시다. 장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전까지만 해도 다이아몬드는 진짜 희귀한 보석이었습니다. 인도나 브라질 정글에서나 가끔 발견되는 왕족들이나 구경하는 귀한 몸이었죠.
그런데 남아공 오렌지 강 근처에서 대형 사고가 터집니다. 한 어린애가 강가에서 반짝이는 돌을 주워 왔는데, 그게 다이아몬드였던 겁니다.
"야, 저기 가면 다이아몬드가 발에 차인대!"
전 세계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땅만 파면 다이아몬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킴벌리 광산 같은 곳에서는 그야말로 톤 단위로 채굴됐죠.
자, 여기서 경제학의 기본 원칙 하나. '공급이 넘치면 가격은 똥값이 된다.'
다이아몬드 광산 주인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야! 그만 파! 그만 파라고! 이렇게 많이 나오면 이거 그냥 유리 조각이랑 다를 게 없잖아!"
"사장님, 땅만 파면 나오는데 어떡합니까?"
"이런 젠장, 이제 다이아몬드는 끝났어. 개나 소나 다 끼고 다니게 생겼네."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폭락하기 직전, 난세의 영웅... 아니, 난세의 장사꾼이 등장합니다. 바로 영국의 사업가 세실 로즈(Cecil Rhodes)였습니다.
2. 드비어스의 탄생: "수도꼭지를 잠가라"
세실 로즈는 머리가 비상했습니다. 그는 생각했죠.
'다이아몬드가 흔해 빠졌다고? 그럼 안 흔하게 만들면 되잖아.'
그는 영국의 자본(로스차일드 가문 등)을 끌어들여 남아공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모조리 사들입니다. 미친 듯이 돈을 질러서 경쟁자들을 다 제거하고 딱 하나의 회사만 남겼습니다. 그게 바로 악명 높은 '드비어스(De Beers)'입니다.
드비어스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90%를 독점했습니다. 그리고 수도꼭지 전략을 썼죠.
"어이 런던 본사! 요즘 시장에 물건이 좀 많이 풀린 거 같은데?"
"네, 가격이 좀 떨어지려고 합니다."
"야, 창고 잠가. 물건 풀지 마. 가격 오를 때까지 버텨."
그들은 창고에 다이아몬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절대 풀지 않았습니다. 시장에는 아주 감질날 만큼 찔끔찔끔 내놓았죠. 사람들은 여전히 다이아몬드가 엄청나게 희귀한 줄 알았습니다. 사실은 드비어스 창고에서 썩어나고 있는데 말이죠.
이것이 바로 '인공적인 희소성'입니다. 사기죠, 사기.
3. 위기와 반전: "결혼반지로 팔아먹자!"
드비어스의 독점으로 가격은 유지됐지만, 1930년대가 되자 진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세계 대공황이 터진 겁니다.
사람들이 밥 굶는 판국에 누가 비싼 돌멩이를 사겠습니까? 유럽과 미국의 다이아몬드 판매량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드비어스의 수장 해리 오펜하이머는 머리를 싸맸습니다.
"큰일 났다. 이러다간 우리 다 굶어 죽겠다. 누가 이 돌멩이를 사게 만들지?"
그때 옆에 있던 마케팅 담당자가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사장님, 부자들한테만 팔아서는 답이 없습니다. 저기 저 서민들, 월급쟁이들 주머니를 털어야 합니다."
"월급쟁이가 무슨 돈이 있어서 다이아를 사?"
"그러니까... '이걸 안 사면 안 되게' 만들어야죠. 결혼할 때 필수로 사게 만드는 겁니다."
드비어스는 미국의 광고 대행사 N.W. 에이어(N.W. Ayer)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 거대한 가스라이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4. 세기의 명카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
1947년, 전설적인 카피가 탄생합니다.
"A Diamond is Forever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이 문구는 천재적이었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 무시무시한 암시가 들어있거든요.
첫째, "다이아몬드 =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는 보석처럼 너의 사랑도 변하지 않는다는 낭만적인 개소... 아니, 메시지를 심어준 겁니다.
둘째, "그러니까 되팔지 마라". 이게 핵심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사실 중고 가격 방어가 안 됩니다. 되팔면 똥값이죠. 근데 사람들이 자꾸 되팔면 시장 가격이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영원히 간직하라(절대 시장에 내놓지 마라)'고 세뇌시킨 겁니다.
광고는 집요했습니다. 영화, 신문, 잡지 어디를 봐도 다이아 반지를 끼고 행복해하는 신부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을 향해 대놓고 협박했습니다.
"두 달 치 월급을 털어서 반지를 사지 않는다면,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와, 진짜 악질 아닙니까? 사랑의 크기를 돈으로, 그것도 월급의 두 배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정해준 겁니다. 남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갑을 열었고, 여자들은 다이아 반지가 없으면 결혼 생활이 불행할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신부의 10%만 다이아 반지를 받았는데, 1990년대에는 80%가 받게 되었습니다. 흔해 빠진 탄소 덩어리가 사랑의 필수조건이 된 겁니다.
5. 일본과 한국 상륙작전: "전통? 갖다 버려!"
서양을 정복한 드비어스는 눈을 동양으로 돌렸습니다. 1960년대 일본.
"아니, 일본 애들은 결혼할 때 무슨 술잔 나눠 마시고 요란하게 하는데 반지를 안 끼네?"
드비어스는 일본의 전통 혼례 문화를 촌스러운 것으로 몰아갔습니다.
"현대적인 여성은 다이아몬드를 받습니다. 서양의 세련된 문화를 배우세요."
이 전략은 일본의 경제 성장과 맞물려 기가 막히게 먹혀들었습니다. 불과 10년 만에 일본 신부의 70%가 다이아 반지를 끼게 됐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결혼할 때 다이아 세트를 맞췄습니까? 다 드비어스 형님들이 만든 유행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 겁니다.
에필로그: 돌멩이의 진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결혼할 때 종로 귀금속 거리를 헤매며 등급(4C)을 따지고, 알 크기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그 반짝이는 돌멩이는 사실 지구상에 엄청나게 많이 매장된 흔한 광물일 뿐입니다. 단지 드비어스가 수도꼭지를 꽉 잠그고, "이건 사랑이야!"라고 외치며 가격을 방어하고 있을 뿐이죠.
심지어 요즘은 실험실에서 만든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In-lab Diamond)'가 나옵니다. 천연이랑 성분도 똑같고 구별도 안 되는데 가격은 1/10 수준입니다. 드비어스는 처음엔 이걸 "가짜"라고 욕하더니, 요즘은 자기들도 몰래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돈 앞엔 장사 없으니까요.
사랑은 보석의 크기나 가격으로 증명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드비어스는 지난 100년 동안 우리에게 "돈을 써야 사랑이다"라고 가르쳤고, 우리는 기꺼이 그 수업료를 지불했습니다.
혹시 여자친구가 "오빠, 내 친구는 1캐럿 받았다던데..."라고 한다면, 조용히 이 글을 보여주십시오. 물론, 그러고 나서 뺨을 맞을지 등짝을 맞을지는 제가 책임 안 집니다. 마케팅이 뇌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건 언제나 위험한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