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의 아키텍처

집착이 빚어낸 백색의 감옥

by 김경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

인류는 이 건축물을 보며 '영원한 사랑'을 찬미한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22년간 2만 명의 노동자를 투입해 만든 백색 대리석의 기적. 하지만 연구자의 건조한 시선으로 이 거대한 건축물을 해부해 보면,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숭고한 사랑보다는 한 남자의 '지독한 소유욕'과 '광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1607년 황실 시장, 16세의 쿠람 황자(샤 자한)와 15세 소녀 아르주만드(뭄타즈 마할)의 운명적 만남.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5년의 기다림 끝에 맺어진 결실.

여기까지는 아름답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데이터는 장르가 바뀐다.

그들은 19년 동안 아이를 14명이나 낳았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임신과 출산의 무한 루프다. 전쟁터까지 만삭의 아내를 대동했던 샤 자한의 행태는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분리 불안이었을까. 결국 왕비는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사랑'이라는 명분 하에 벌어진 생물학적 학대에 가깝다.



왕비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 "나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달라."

샤 자한은 이 유언을 지나치게 충실히 이행했다. 국고를 탕진해 가며 타지마할을 세웠다.


흰 대리석은 새벽에는 분홍색, 정오에는 눈부신 백색, 저녁에는 황금빛으로 변한다. 이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연인의 감정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빛의 아키텍처'다. 시각장애인에게조차 그 색채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만큼 압도적인 미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의 대가는 혹독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폭군이 된 샤 자한은 결국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폐위당해 아그라 요새에 유폐된다. 그는 죽는 날까지 감옥의 작은 창문을 통해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에게 타지마할은 사랑의 증거였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가둔 거대한 감옥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차가운 대리석 속에 가두고, 본인은 과거의 기억 속에 유폐된 삶.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기억의 박제'다.



이 비극적인 서사를 현대의 연인 관계에 대입해 본다.

연인들은 종종 묻는다. "나 죽으면 타지마할 같은 거 지어줄 거야?"

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대답은 무엇일까.

"아니. 화장해서 나무 밑에 뿌려줄 것이다. 그리고 산 사람은 그 나무 그늘에서 시원하게 낮잠이나 자는 게 낫다."


샤 자한 식의 사랑은 위험하다. 상대를 영원히 붙잡아두려는 욕망은 결국 파멸을 부른다. 진정한 사랑의 아키텍처는 거대한 무덤을 짓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남은 자는 자신의 생을 충실히 살아내는 '비움'에 있지 않을까.

물론, 샤 자한의 광기가 없었다면 인류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은 고통 위에서 피어난다고 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굳이 그런 비극적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

죽은 뒤의 궁전보다, 살아있을 때 함께 먹는 따뜻한 밥 한 끼(물론 14첩 반상은 아니어도 된다)가 더 가치 있는 법이니까.



샤 자한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폐하, 14명은 좀 심했습니다. 뭄타즈 마할 님이 진짜 원했던 건 대리석 궁전이 아니라, 14번째 출산만은 피하게 해주는 '피임'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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