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Weeding)의 미학

217번의 에러 코드가 만든 데이터

by 김경훈


우리가 매일 마시는 스타벅스 커피 향 뒤에는 지독한 쓴맛이 숨어 있다.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자신의 사업 계획서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다녔으나, 무려 217명에게 거절당했다. 정보 검색(Information Retrieval)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217번의 '검색 실패(Search Failure)'를 겪은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서너 번의 검색 결과가 'Null(없음)'로 나오면 키워드를 바꾸거나 검색을 포기한다. 217번의 거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비전이 '틀렸다'는 피드백을 217번이나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슐츠는 그 217개의 '불일치 데이터'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218번째의 '정확률(Precision)'을 높이기 위한 노이즈 제거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월트 디즈니의 사례는 시간의 축을 더 길게 늘린다. 허허벌판에 꿈의 나라를 짓겠다는 그의 계획서는 20년 동안 은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은행가들의 눈에 그는 몽상가 즉 '신뢰할 수 없는 출처(Unreliable Source)'였다.

하지만 20년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정보 아키텍처(Information Architecture)를 수정하고 보완하며 완벽하게 아카이빙(Archiving) 하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한 은행이 투자를 결정했을 때, 그들은 몽상가의 헛소리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20년간 숙성된 치밀한 설계도에 베팅한 것이다. 디즈니가 성공 후에도 그 은행하고만 거래했다는 사실은 자신의 데이터 가치를 알아봐 준 유일한 '인덱서(Indexer)'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다.



슐츠와 디즈니는 해냈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실패 앞에서 멈춰 선다. 왜 우리는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가? 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 비용(Sunk Cost)'이라 부르고, 심리학에서는 '자아 방어 기제'라 부른다.

하지만 도서관학에는 더 적절한 용어가 있다. 바로 '장서 폐기(Weeding)'다.

도서관은 새로운 책을 들여놓기 위해, 낡고 훼손되거나 가치가 떨어진 책을 주기적으로 서가에서 빼내어 폐기해야 한다. 이것은 잔인한 작업이 아니다. 낡은 책을 버리지 않으면(공간을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지식이 들어올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창고가 아닌 유기체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수집'이 아니라 '폐기'다.



사람들이 좌절의 늪에서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실패를 '폐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내가 왕년에 어땠는데".

이런 생각들은 서가를 가득 채운 낡은 책들이다. 이것들을 과감하게 들어내지 않으면 '재시작(Restart)'이라는 신간 도서는 결코 꽂힐 수 없다.

슐츠가 217번째 거절을 당하고 218번째 투자자를 만나러 갈 때, 그는 앞선 217번의 거절 기억을 심리적 서가에서 폐기했을 것이다. 20년을 기다린 디즈니 역시 매일 아침 거절당한 어제의 기억을 리셋 버튼으로 지웠을 것이다.



인생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같다. 우리가 입력하는 쿼리(질문)에 세상은 종종 "검색 결과 없음"이나 "접근 거부(Access Denied)"라는 에러 메시지를 띄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다. 슐츠처럼 218번째 쿼리를 입력하는 끈기, 디즈니처럼 20년 동안 서버 접속을 시도하는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실패의 로그(Log) 기록을 과감히 삭제하고 시스템을 재부팅할 수 있는 용기다.


당신이 지금 거절당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아직 당신의 데이터와 호환되는 투자자(서버)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폐기하라. 상처받은 자존심과 실패의 기억을.

그리고 빈 서가에 다시 새로운 계획서를 꽂아라. 성공은 비워진 자리에서만 싹을 틔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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