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알고리즘을 해킹하는 법

엘레우시스와 과학의 도박

by 김경훈


1956년 로버트 애벗이 고안한 '엘레우시스'는 단순한 카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수행해 온 지적 탐구 과정, 즉 '과학(Science)'의 완벽한 축소판이다.

게임의 구조는 심오하다. 한 명의 플레이어가 '신(God)'이 되어 우주의 법칙(규칙)을 정한다.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연구자가 되어 카드를 한 장씩 내밀며 그 법칙을 탐색한다. 신은 오직 "합격(True)" 또는 "불합격(False)"만을 판정한다.

이 과정은 과학자가 자연계의 현상을 관찰하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합격 판정을 받아 바닥에 나열된 카드들은 '실험 데이터'이고, 불합격된 카드들은 '오류 데이터'다. 플레이어는 이 파편적인 데이터들을 귀납적으로 분석하여, 신이 숨겨놓은 '우주의 섭리'를 역설계(Reverse Engineering) 해야 한다.



엘레우시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역설은 "법칙이 단순할수록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숫자가 7보다 크고 작은 카드가 번갈아 나온다"는 규칙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이 규칙을 찾지 못해 쩔쩔맨다. 왜일까? 인간의 뇌는 복잡한 패턴을 찾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색깔(빨강/검정), 무늬(하트/스페이드), 그림(킹/퀸) 같은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정보에 먼저 집착한다. 그들은 "빨간색 하트 다음에는 검은색 스페이드가 와야 한다"는 식의 복잡한 가설을 세우고 스스로 함정에 빠진다.

이는 정보학에서 말하는 '과적합(Overfitting)'의 오류와 유사하다. 데이터의 본질(숫자)보다 노이즈(색깔, 무늬)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정작 눈앞의 단순한 진리를 놓치는 것이다. 때로는 진리가 너무 투명해서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게임 도중 누군가 법칙을 깨달았다고 생각하면 '예언자(Prophet)'를 선언한다. 이제 그는 신을 대신해 카드의 합격 여부를 판정한다. 하지만 그가 단 한 번이라도 틀리면 즉시 파면당한다.

이 가혹한 규칙은 칼 포퍼(Karl Popper)가 주창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의 원리를 보여준다. 과학에서 영원불변한 진리는 없다. 모든 이론은 '아직 반증되지 않은 가설'일뿐이다.

예언자는 자신이 법칙을 완벽히 안다고 믿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나온 데이터에 부합하는 '임시 모델'을 만들었을 뿐이다. 새로운 카드(변수)가 등장하여 그의 모델을 깨뜨리는 순간, 그는 예언자의 지위를 잃고 다시 평범한 연구자로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과학 혁명의 구조다. 뉴턴 역학이 지배하던 세상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카드가 등장했을 때, 뉴턴이라는 예언자가 파면당했듯이 말이다.



이 게임의 필승 전략은 역설적이다. "확신이 들지 않아도 빨리 예언자를 자처하라."

신중하게 관찰만 하는 플레이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신의 가설을 테이블 위에 던지는 자만이 법칙에 접근할 수 있다. 설령 틀려서 파면당하더라도, 그 실패 자체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결정적인 정보(힌트)가 된다.

정보 탐색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데이터를 기다려서는 늦다.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끊임없이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겪으며 오차 범위를 줄여나가는 것. 그것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다.



우리의 인생도 거대한 엘레우시스 게임판이다. 세상(신)은 우리에게 명확한 매뉴얼을 주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던지는 행동(카드)에 대해 성공(합격)과 실패(불합격)라는 결과값만 무심하게 던져줄 뿐이다.


우리는 매일 "왜 이 카드는 안 받아들여졌지?"라고 고민하며 삶의 규칙을 추론한다. 때로는 엉뚱한 가설을 세워 좌절하기도 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다 단순한 행복을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게임에서 패배하는 유일한 방법은 카드를 내지 않고 멈춰 서 있는 것뿐이다. 틀릴지라도 과감하게 카드를 던져라. 그래야만 신이 숨겨둔 침묵의 규칙을, 그 '우주의 섭리'를 아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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