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우주

15세 소년의 꿈과 코페르니쿠적 전환

by 김경훈


나는 15살까지 천문학자를 꿈꾸었다. 망원경 렌즈 너머로 토성의 고리를 확인하던 전율을 기억한다. 그러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을 때, 나는 우주도 함께 사라졌다고 믿었다.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문학의 역사를 다시 읽으며 나는 깨닫는다. 인류가 우주를 오해했던 가장 큰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눈(Vision)'을 너무 맹신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직관적이다. 우리 눈에는 분명히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땅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중세까지 인류를 가두었던 감옥이었다. 시각은 종종 진실을 가리는 가장 강력한 환각제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튀코 브라헤가 방대한 관측 데이터를 남겼지만, 우주의 진짜 비밀(타원 궤도)을 푼 것은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흥미로운 점은 케플러가 브라헤의 조수로 일할 때, 브라헤가 데이터를 독점(Information Monopoly) 했다는 사실이다. 브라헤 사후에야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케플러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보다 책상머리에서 숫자를 계산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행성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은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패턴으로 읽어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그는 '원시 데이터(Raw Data)'를 가공하여 '부가가치(Insight)'를 창출한 분석가였다. 행성 궤도가 찌그러진 타원이라는 사실은 눈으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다. 오직 수학적 이성(Logos)으로만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가능성이 열린다. 천문학은 이제 '관측(Seeing)'의 학문이 아니라 '해석(Analyzing)'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우주의 무한성을 주장하다 화형 당했고, 혀가 뽑혔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철회하는 대가로 목숨을 부지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나의 관점에서 중세 교회는 '진실의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매몰 비용을 치르고 있었다. 그들은 기존 질서(천동설)를 방어하기 위해 이단 심문과 금서 지정이라는 진입 장벽을 세웠다. 하지만 시장이 효율성을 찾아가듯, 진실은 결국 억압 비용을 뚫고 나온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읊조린 것은 패배자의 변명이 아니라, 어떤 권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우주의 펀더멘털(Fundamental)에 대한 확신이었다.



현대 천문학이 밝혀낸 우주의 95%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다. 이것들은 어차피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안인(비장애인) 천문학자들도 이제는 광학 망원경보다 전파 망원경이 수집한 그래프와 숫자를 통해 우주를 본다.

최근에는 '데이터의 청각화(Sonification)'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블랙홀의 충돌이나 별의 진동을 소리로 변환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나 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소식이다. 15살 때 잃어버린 시각 대신, 예민해진 청각과 촉각으로 우주의 데이터를 만질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00년의 설문 조사에서 현대인의 상당수가 여전히 천동설을 믿고 있다는 결과는 충격적이다. 그들은 두 눈을 뜨고 있지만, 여전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착시에 갇혀 있다.

반면, 나는 앞을 볼 수 없지만 코페르니쿠스의 회전을 느낀다.

지구는 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중력의 감각, 계절마다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 그리고 스크린리더가 읽어주는 최신 천체 물리학 논문의 데이터가 그것을 증명한다.


15살 소년 김경훈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

망원경은 내려놓았지만, 나는 이제 '데이터'라는 새로운 렌즈를 끼고 우주를 항해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우주의 본질인 암흑과 가장 닮아 있다는 뜻이자, 누구보다 별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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