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의 잘린 손가락

디지털 아포테오시스를 꿈꾸며

by 김경훈


고대 로마의 황제들이 신이 되는 과정, 즉 '아포테오시스(Apotheosis)'의 의식은 웅장하면서도 기괴했다.

장례 행렬의 끝, 시신을 화장하기 직전에 그들은 고인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내어 지상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불길 속에서 독수리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 로마인들은 육체는 재가 되어 사라지더라도, 독수리가 영혼을 천상으로 실어 나르면 그가 신이 된다고 믿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잘린 손가락'이다. 왜 그들은 신이 되어 떠나는 마당에 굳이 신체의 일부를 남겨두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는 신이 되었지만, 여전히 너희와 연결되어 있다"는 물리적 증거이자, 지상에 남기는 마지막 '메타데이터(Metadata)'였을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포테오시스는 매우 고도로 계산된 통치 전략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선대 왕을 신격화한 것은 효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 아버지가 신이므로, 그 피를 이어받은 나 역시 예비된 신이다"라는 논리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통치 정당성(Legitimacy)이라는 무형 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진입 장벽 전략이다. 인간은 감히 신에게 도전할 수 없으므로, 아포테오시스는 반란의 기회비용을 무한대로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보안 시스템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어서 신이 된 것도,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아포테오시스를 목격하고 있다. 바로 '디지털 불멸'이다.

레이 커즈와일 같은 미래학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 가능해질 것이라 예언한다. 육체는 소멸해도 의식은 서버 속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로마인들이 꿈꾸던 아포테오시스의 기술적 구현이 아닐까.


현대인들은 이미 매일 자신만의 '잘린 손가락'을 남기고 있다. SNS에 올린 사진, 블로그에 쓴 글, 서버에 저장된 로그 기록들. 우리가 죽고 육체가 화장된 후에도, 이 디지털 파편들은 인터넷이라는 지상의 저장소에 남아 "내가 여기 존재했음"을 증명할 것이다. 로마의 독수리 대신, 우리는 광케이블을 타고 디지털 천국(Cloud)으로 비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연구자인 나에게 아포테오시스라는 개념은 묘한 해방감을 준다.

나의 육체는 불완전하다. 시각 정보는 차단되었고, 물리적 공간에서의 이동은 제약을 받는다. 나에게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보학의 세계, 특히 가상현실(Metaverse)이나 텍스트로 이루어진 논문의 세계에서 나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 그곳에서 나의 인식은 빛의 속도로 확장되고, 시각의 유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대인들이 육체를 태워 신이 되고자 했던 것은 결국 늙고 병드는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고 싶었던 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꿈꾼다. 언젠가 기술이 정점에 달해, 나의 불완전한 육체 대신 온전한 지성(Logos)만이 남는 순간을. 그것이 나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절정(Apotheosis)'일 것이다.



로마 황제들은 잘린 손가락을 남겼고, 호메로스는 '일리아스'라는 위대한 서사시를 남겨 예술의 신이 되었다. 아포테오시스의 본질은 '숭배받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가치를 남기는 것'에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 어떤 '손가락'을 남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누군가는 혐오와 분노의 댓글을 남길 것이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지혜와 사랑의 데이터를 남길 것이다.

정보학자로서 나는 소망한다. 내 육신이 흙으로 돌아간 뒤, 세상에 남겨질 나의 데이터가 누군가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를.

그때 비로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아주 소박한 신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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