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의 변증법
역사는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문명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다. 레닌이 말했던 "3보 전진, 2보 후퇴"는 단순한 혁명 전술이 아니라, 인류 문명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리듬이다.
로마 제국을 보라. 법률과 도로, 수도교로 대표되는 '팍스 로마나'는 인류가 도달한 찬란한 3보 전진이었다. 그러나 그 정점에서 문명은 비대해졌고, 부패했으며, 결국 쇠락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어진 중세 천 년은 흔히 '암흑기'라 불리는 2보 후퇴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말 문명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비극일까? 경제학의 경기 순환 곡선(Business Cycle)이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며 시장의 거품을 걷어내듯, 문명의 후퇴 역시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정 국면'일지 모른다.
개인의 삶도 이 거대한 역사의 축소판이다. 나에게 '2보 후퇴'는 길랑바래 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찾아왔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신경계가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10대 청년의 문명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지가 마비되고, 호흡이 가라앉고, 무엇보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던 '시신경'이 위축되어 빛을 잃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순간이었다.
찬란했던 시각의 시대가 끝나고, 깊고 어두운 중세 암흑기가 도래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가. 이것은 2보 후퇴가 아니라, 완전한 추락이 아닌가."
그러나 역사학계의 최근 연구들은 중세를 단순한 암흑기로 보지 않는다. 그 시기는 고대의 지식이 수도원에서 필사(Archiving) 되고, 대학(University)이 탄생했으며, 르네상스를 위한 에너지가 응축되던 '인큐베이터'의 시간이었다.
나의 실명(失明) 기간도 그러했다. 시각 정보가 차단된 그 '2보 후퇴'의 시간 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경제학도였던 나는 효율성과 숫자의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정보의 불평등과 접근성이라는 문헌정보학적 화두를 붙잡게 되었다.
만약 길랑바래 증후군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화려한 현상(Phenomenon)만 쫓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육체의 붕괴라는 강제된 후퇴가 나를 '정보 접근성 연구자'라는 새로운 궤도로 밀어 올린 것이다.
시선을 다시 거시적으로 돌려보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문명은 어디쯤 와 있는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명백한 '3보 전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짜 뉴스(Fake News),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 편향, 도파민 중독이라는 심각한 '2보 후퇴'를 겪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으나 인간의 지성은 퇴보하는 듯한 기현상.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이 혼란은 우리가 정보를 다루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편되어야 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로마가 무너진 자리에 근대 국가가 섰듯이 지금의 정보 무질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더 정교한 '디지털 리터러시'와 'AI 윤리'가 정립될 것이다. 후퇴는 멈춤이 아니라, 도약을 위한 웅크림이다.
"3보 전진, 2보 후퇴."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결국 '1보 전진(3-2=1)'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비록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때로는 한참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아도, 문명과 인간은 결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듯, 우리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조금 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해 있다.
나는 시력을 잃었지만(2보 후퇴), 그 덕분에 세상을 소리로 읽는 더 넓은 시야(3보 전진)를 얻었다.
지금 삶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느끼는가? 혹은 우리 사회가 퇴보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두려워 말자. 그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문명을 쌓기 위해 기초를 다시 다지는 소란스러운 공사 현장의 소음일 뿐이다.
우리는 결국,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