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이전의 신호

도서관은 비명을 수집하지 않는다

by 김경훈


인간의 생애주기(Life Cycle)를 정보학적으로 기록한다면, 그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는 동일한 데이터 값으로 채워질 것이다. 바로 '외침'이다.

신생아의 울음은 "나는 존재한다"는 최초의 선언(Declaration)이며, 죽어가는 자의 단말마는 "나는 존재했다"는 최후의 증명이다. 이 두 외침 사이의 기간 동안, 인간은 언어와 문자라는 정제된 도구를 사용하여 소통하려 애쓴다. 하지만 언어는 불완전하다. 극한의 고통, 터질듯한 환희, 그리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 언어(Logos)는 힘을 잃고, 우리는 다시 태초의 외침(Pathos)으로 회귀한다.



고대 그리스 병사들의 함성 '알랄라(Alala)'나 게르만족이 방패에 대고 질렀던 고함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음향 기술(Sound Technology)'이었다.

시각장애인인 나는 게르만족의 전술에 특히 주목한다. 그들은 방패를 공명판(Resonance Board)으로 사용하여 소리를 증폭시키고 왜곡했다. 눈으로 전장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을 때,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소리는 공간 감각을 무너뜨린다. 적군의 말(馬)들이 미쳐 날뛴 것은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의 불일치가 가져온 인지적 패닉(Cognitive Panic) 때문이었을 것이다.

브르타뉴 설화 속 귀신 '오페르 노즈' 역시 소리를 이용해 여행자를 함정에 빠뜨린다. 소리는 이토록 강력한 공간 장악력을 가진다. 나에게 세상은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들리는 풍경이기에, 누군가의 '외침'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내 공간을 뒤흔드는 물리적 타격으로 다가온다.



문헌정보학은 기본적으로 '로고스(Logos, 이성/언어)'의 학문이다. 도서관은 소음을 제거하고, 정제된 텍스트만을 분류하여 서가에 꽂는다. 듀이십진분류법(DDC) 어디에도 '비명'이나 '함성'을 분류할 코드는 없다. 도서관은 침묵을 강요함으로써 지식을 보존한다.

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지식의 거대한 누락(Omission)이다. 역사는 도서관의 정숙한 열람실이 아니라, 광장의 거친 함성 속에서 바뀌어 왔다. 혁명의 구호, 전쟁의 비명, 억울한 자들의 통곡. 이 '날것의 데이터(Raw Data)'들은 텍스트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그 처절한 에너지를 잃고 창백한 활자로 박제된다.


정보학자인 나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텍스트로 기록된 역사(History)는 잘 보존하고 있지만, 기록되지 못한, 혹은 언어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외침(Scream)은 어떻게 아카이빙 할 것인가? 텍스트로 번역되지 않는 고통은 정보로서 가치가 없는가?



디지털 공간에서도 외침은 존재한다. 다만 소리가 없을 뿐이다.

시각장애인이 스크린리더를 켜고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Alt-text)가 없으면 스크린리더는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라는 무의미한 기계음만 반복하거나, 아예 침묵한다.

그 침묵의 순간, 사용자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여기에 정보가 있나요? 나에게도 알려주세요!"

이것은 들리지 않는 비명이다. 정보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시스템은 이들의 외침을 '오류'나 '예외 처리'로 넘겨버리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시스템이 가장 먼저 귀 기울여야 할 '구조 신호(SOS)'다.



야곱의 아들 르우벤의 고함이 사람들을 떨게 했듯, 진정한 울림은 잘 다듬어진 문장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육성에서 나온다.

나는 꿈꾼다. 미래의 도서관과 정보 시스템은 잘 정돈된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 텍스트 뒤에 숨겨진 인간의 떨림과 외침까지 포용할 수 있기를.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외쳐야 한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 절박한 소리들을 우리가 '정보'로서 존중할 때, 비로소 세상의 모든 데이터는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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