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Dictionary)의 오해

나는 기꺼이 '스튀피드'가 되겠다

by 김경훈


언어학에는 '의미 변화(Semantic Change)'라는 현상이 있다. 단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확장되거나 축소되고, 때로는 타락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욕설의 대부분은 이 '의미론적 타락(Pejoration)'의 피해자들이다.

문헌정보학자로서 나는 단어의 현재 쓰임새(Usage)보다, 그 단어가 태어날 때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데이터 값(Etymology)에 더 관심을 둔다. 도서관의 서가 깊숙한 곳, 어원 사전을 펼쳐보면 우리가 '바보', '천치'라고 비하했던 단어들이 사실은 꽤 고귀하고 철학적인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마치 분류가 잘못되어 폐기 도서 목록에 들어간 희귀본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오늘은 이 억울한 단어들을 '재분류(Re-classification)' 해보려 한다.



그리스어 '이디오테스(Idiotes)'에서 유래한 '이디오'는 오늘날 지능이 낮은 사람을 뜻하지만, 원래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적인 개인'을 뜻했다. 즉, 남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Idio-)를 가진 사람이다.

정보학적 관점에서 이 '이디오'는 현대 웹 3.0 시대가 추구하는 '개인화(Personalization)'의 원형이다. 대중의 유행(Trend)을 맹목적으로 쫓지 않고, 자신만의 알고리즘과 취향을 고수하는 사람. 집단 지성이라는 이름 아래 개성이 함몰되는 사회에서 기꺼이 '이디오'로 남는다는 것은 자기만의 고유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정보 주권 선언'과도 같다.



라틴어 '임베킬루스(Imbecillus)'는 '지팡이(Bacillum)가 없는(Im-)' 사람을 뜻한다. 통념상 지팡이가 없어서 비틀거리는 약자로 해석되지만, 텍스트의 해석처럼 '지팡이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이 어원은 묘한 울림을 준다. 나는 물리적으로는 '흰 지팡이'에 의존해야만 걸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나는 '앵베실'을 꿈꾼다.

권위 있는 교수의 해석(지팡이)이나, AI가 요약해 주는 정답(지팡이)에 기대지 않고, 비틀거리더라도 내 사유의 두 발로 팩트를 검증하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

정보 리터러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습자를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정보를 찾고 판단할 수 있는 '지적 앵베실(독립적 탐구자)'로 키워내는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는 '스튀피드'다. 라틴어 '스투피두스(Stupidus)'는 '놀라서 멍해진 상태'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앎의 시작은 '타우마제인(Thaumazein, 경이로움)'이라고 했다. 밤하늘을 보고,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 '멍청한' 상태가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다.

반면, 현대인들은 너무 똑똑해서(Smart) 놀라지 않는다. 검색 한 번이면 답이 나오니 세상에 신비로운 것이 없다. 정보학적으로 볼 때, '더 이상 놀라지 않는 상태'는 지적 호기심이 멈춘 상태, 즉 '데이터 입력 중단' 상태다.

나는 연구자로서 매일 '스튀피드'가 되기를 자처한다.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과 복잡한 현상 앞에서 "와, 이게 도대체 뭐지?"라고 멍하니 입을 벌리는 능력. 그 순수한 무지(無知)의 자각이야말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가장 강력한 진공펌프다.



세상은 남과 다르면 '이디오'라 부르고, 남에게 묻어가지 않으면 '앵베실'이라 부르며, 사소한 것에 감탄하면 '스튀피드'라고 비웃는다.

하지만 문헌정보학적 어원 분석을 마친 지금, 이 단어들은 더 이상 욕설이 아니다.


이디오(Idiot): 고유한 취향을 가진 자.

앵베실(Imbecile): 권위에 기대지 않는 자.

스튀피드(Stupid): 세상에 경탄할 줄 아는 자.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런 욕을 한다면,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답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나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류(Classification)해 주셨군요."

우리는 조금 더 '스튀피드'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은 알고 보면 도서관의 서가처럼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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