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든 호모 사피엔스
인간만이 이유 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른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지면의 먹이를 탐색할 때,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응시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해부학적 특권에 있다. 뇌와 척수가 연결되는 통로인 대후두공이 두개골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인간은 무거운 두뇌를 척추 위에 균형 있게 얹고 적은 에너지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선의 권력 이동과 공동주의
직립보행은 감각의 권력을 코에서 눈으로 옮겨놓았다. 네 발로 걷던 시절의 핵심 감각이 후각이었다면, 두 발로 서기 시작한 인간에게는 시각이 세상을 파악하는 중심이 된다. 눈의 흰 공막이 커지면서 인간은 서로의 시선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인류 문명의 기초가 된 공동주의이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이들이 그 시선을 따라갈 때, 인간은 흩어진 별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인지혁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가상의 질서를 함께 믿는 능력, 즉 허구를 말하는 능력이 신화와 종교, 법과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150명이라는 이성의 마지노선
인간의 사회적 능력은 경이롭지만 물리적 한계 또한 명확하다. 로빈 던바가 제안한 던바의 수는 인간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원을 약 150명으로 제한한다. 뇌의 신피질 크기가 허용하는 신뢰의 범위가 딱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로마 군대의 전술 단위나 신석기 마을의 규모가 150명 내외였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시선을 나눌 수 있는 이 범위 안에서 인간은 합리적인 그룹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 선을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그룹이 아닌 군중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군중심리의 늪과 익명성
인간이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는 임계점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 단 다섯 명만 하늘을 보아도 행인의 80퍼센트가 발길을 멈췄다. 세 명에서 다섯 명 사이의 일관된 시선은 개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를 객관적인 상황으로 오인하게 만든다.
솔로몬 애쉬의 실험 역시 인간이 집단의 오답에 얼마나 쉽게 동조하는지 보여준다. 150명을 넘어선 군중은 익명성, 전염성, 피암시성이라는 세 가지 독약에 취하기 쉽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독립적인 이성을 상실하고, 선동가의 말에 비판 없이 복종하는 폭력적인 존재로 변질되기도 한다.
정보 리터러시를 위한 성찰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기술이라는 정교한 보철을 통해 수억 명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물학적 하드웨어는 여전히 150명의 다정한 시선 안에서 가장 안전하게 작동한다. 알고리즘이 설계한 거대한 군중의 파도 속에서 개인이 이성을 지키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보 접근성을 연구하는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리터러시는 단순히 정보를 읽는 능력이 아니다. 군중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대후두공을 바로 세워 독립적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곁에 있는 안내견 탱고가 군중의 소음보다 나의 미세한 보폭에 집중하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허상의 군중이 아닌 실재하는 150명과의 진실한 연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