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클라우드 서비스

델포이와 유료 결제자의 비극

by 김경훈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지구의 중심을 찾으려 했던 시도는 인류 최초의 지오로케이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그가 낙점한 옴팔로스는 말하자면 고대 세계의 메인 서버실이었다. 아폴론은 그곳의 기존 운영 체제였던 거대한 뱀을 과감하게 삭제(Delete)하고 자신의 신전이라는 최신형 하이엔드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른바 아폴론 클라우드 서비스의 시작이다.



대사제 피티아와 기획된 할루시네이션


델포이의 핵심 알고리즘은 여사제 피티아의 입에서 출력되는 비정형 데이터였다. 월계수 잎을 씹으며 몽롱한 접신 상태에서 내뱉는 그녀의 언어는 사실상 정제되지 않은 로우 데이터(Raw Data)였다. 곁에 선 예언자들은 이 난해한 소스 코드를 일반 이용자가 읽기 편한 자연어로 변환해주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팀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 번역 과정에는 치명적인 보안 허점이 존재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무력으로 시스템 관리자를 위협하거나 거액의 재물을 바치는 유료 티어(VIP Tier) 이용자들에게는 항상 긍정적인 결과값만 도출되었다. 이것은 고대판 알고리즘 조작이자 지독한 매관매직이다. 신성한 신탁조차 자본과 권력이라는 외부 변수에 의해 얼마든지 필터링될 수 있음을 델포이는 증명하고 있다.



크로이소스의 프롬프트 실패와 시스템 셧다운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역사상 가장 멍청한 이용자로 기록될 만하다. 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 여부를 묻는 신탁에 위대한 제국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답변을 받자마자 기뻐하며 군대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데이터의 중의성(Ambiguity)을 간과했다. 어느 제국이 망할 것인지를 묻는 추가 질문(Follow up question)을 던지지 않은 채 자신의 희망 사항을 투사한 결과값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는 현대의 이용자들이 검색 엔진의 상단 결과물만 맹신하다가 가짜 뉴스에 낚이는 확증 편향의 오류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신탁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이 내놓은 모호한 답변(Hallucination)에 전 재산과 국가를 올인한 크로이소스의 최후는 정보 리터러시가 부족한 리더가 조직을 어떻게 시스템 셧다운 상태로 몰아넣는지 보여주는 잔혹한 사례이다.



조수석에서 바라본 침묵하는 서버실


4세기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델포이의 전원이 내려졌을 때 피티아는 마지막 예언을 남겼다. 샘물은 조용해지고 말하던 물결은 침묵하리라는 그 말은 화려했던 정보의 전성기가 끝나고 데이터의 암흑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로그 기록이다.


보보가 운전하는 투싼의 조수석에 앉아 창밖의 정막한 산세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은 델포이의 침묵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정보의 과잉과 소음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쾌한 신탁이 아니라 어쩌면 불필요한 데이터를 스스로 삭제하고 침묵할 줄 아는 시스템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델포이의 폐쇄는 단순히 종교의 몰락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데이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시스템의 자발적 퇴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연구란 결국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오해를 분석하는 과정이다. 델포이의 신전 입구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은 사실 지독한 풍자였을 것이다. 자신의 무지함조차 모르는 인간들이 신의 대역폭에 접속하려 할 때 발생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아폴론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연구실의 텍스트들 사이에서 크로이소스처럼 경솔한 결론을 내리지 않기 위해 비판적 리터러시라는 방패를 닦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톤의 돌덩이와 보이지 않는 비트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