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치호랑이의 이빨이 남긴 ‘취향의 비극’

by 김경훈

예전 스톤에이지라는 게임 속에서 늠름하게 필드를 누비던 베르가나 고르고르를 기억한다. 그 시절 우리에게 검치호랑이는 압도적인 강함의 상징이었고, 입 밖으로 길게 뻗어 나온 그 서슬 퍼런 송곳니는 그저 ‘멋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렌즈를 끼고 그들의 멸종사를 들여다보면, 그 화려한 이빨은 강함의 상징이 아니라 시스템의 설정 오류가 부른 비극적인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고 사양’이 부른 시스템 과부하


검치호랑이 즉 스밀로돈은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도 가히 ‘끝판왕’급 사양을 가졌다. 몸무게 300킬로그램에 달하는 거구와 20센티미터가 넘는 칼이빨은 대적할 자가 없는 무기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파멸로 이끈 것은 바로 그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소행성 충돌이나 기후 변화 같은 거창한 외부 요인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 사회 내부의 ‘문화적 선택’이 멸종의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꽤나 흥미롭다. 더 긴 이빨을 가진 수컷이 사냥을 잘해올 것이라는 암컷들의 믿음이 유전자에 각인되면서 검치호랑이 가문은 오직 ‘긴 이빨’이라는 단 하나의 스펙에만 올인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함정: 맹목적인 추종이 만든 ‘데드락’


이것은 일종의 ‘선택 편향’이 불러온 비극이다. 암컷들의 부추김에 응답하듯 수컷들의 이빨은 대를 거듭할수록 길어졌다. 처음에는 생존에 유리한 도구였겠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자 그 이빨은 제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너무 길어진 이빨 때문에 정작 먹이를 입에 넣을 수조차 없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강함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결국 생존이라는 본질적인 목적을 갉아먹었다. 한 번 정해진 진화의 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무기에 갇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게임 속에서 우리가 열광했던 베르가의 그 멋진 이빨이 사실은 종을 멸망으로 몰고 간 ‘아름다운 감옥’이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본질을 잊은 ‘보여주기’의 끝


검치호랑이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추구하는 ‘더 나은 스펙’이나 ‘더 화려한 겉모습’이 정말로 우리의 생존과 행복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본질적인 가치보다 외적인 상징에만 집착할 때, 그 시스템은 반드시 붕괴하기 마련이다.


스톤에이지의 들판을 달리던 그 시절의 기억 속에서 검치호랑이는 여전히 영웅이지만, 현실의 역사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균형을 잃은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칼날이 된다고 말이다.



검치호랑이의 긴 송곳니는 어쩌면 현대인이 집착하는 수많은 ‘과잉 스펙’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더 강해 보이고 싶어서 혹은 더 선택받고 싶어서 본질을 잊은 채 키워온 우리만의 ‘이빨’은 무엇일까.


게임 속 베르가와 고르고르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들의 이빨이 조금만 더 짧았더라면, 그래서 그들이 지금까지 우리 곁에 살아남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5억 명을 묶은 공통 소스 코드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