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없는 코드와 피 흐르는 문장 사이에서

by 김경훈

2026년의 시작은 기묘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중국의 춘완 무대에서는 230억 개의 시선 앞에서 로봇들이 춤을 추고 사람들은 그 차가운 기계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시대다. 이쯤 되면 내가 지금 정리하는 이 기록들이 실시간 이슈인지 아니면 우주 전체의 기억을 담은 아카식 레코드를 기반으로 한 SF 소설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 거대한 데이터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 동인지 여여시 5집의 발간 소식은 마치 시스템의 오류를 뚫고 솟아오른 가장 인간적인 에러 메시지처럼 들린다.



울타리를 밟고 나가는 위버멘쉬의 발걸음


이번 동인지의 제목은 우리라는 울타리를 무심히 밟고이다. 춘완의 집단 각인이나 올림픽 독점 중계처럼 우리라는 거대 담론에 갇혀 사육되는 시대를 향한 서늘한 일침이다. 니체가 말했던 초인 위버멘쉬는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드는 존재다. 여여시의 동인들은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심화시켜 왔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미학과 제임스 터렐의 빛 예술에서 얻은 영감을 품고 그들은 여전히 빛과 그늘의 숲을 산책 중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획일화된 취향의 울타리를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시인들의 발소리는 아카식 레코드의 가장 깊은 곳에 기록될 소중한 로그다.



심장과 자궁 :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생명의 수혈


AI가 시를 쓰는 시대에 사람들은 문학의 종말을 예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여시는 묻는다. 심장이 없는 기계가 뜨거운 피를 퍼 올릴 수 있을까.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이 없는 존재가 온몸으로 문장을 낳을 수 있을까. 시는 단순히 단어를 조합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혼을 지탱하기 위해 시인의 서재에서 밤늦도록 이루어지는 지독한 수혈이다.


처칠이 월스트리트라는 낯선 산에서 길을 잃었듯 인공지능은 데이터라는 산에서는 고수일지 모르나 인간의 고통과 환희라는 심연의 골짜기에서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여여시 시인들이 엽편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감행하는 것은 기계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역동적인 리터러시다.



사라지지 않을 서재의 불빛


세상에 시가 부족해서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다. 시를 쓰는 가슴을 지키기 위해 시를 쓴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1초 만에 시안을 뽑아내는 AI 로봇이 압승이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불이 났을 때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작품을 구하듯 시인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에서 가장 가까운 진실 하나를 건져 올리기 위해 생을 건다.


전쟁과 전염병이 창궐하고 저출산과 자살률이라는 차가운 통계 수치가 우리를 압박해도 시인의 서재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검치호랑이의 긴 송곳니처럼 화려한 스펙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돌고래처럼 잠든 중에도 꿈을 꾸며 인간 존재의 무결성을 증명하려는 고귀한 투쟁이다.



시각장애인 연구자이자 시를 사랑하는 엘리야로서 나는 안내견 탱고와 함께 이 기록의 숲을 걷는다. 230억 뷰의 로봇 쇼와 시 한 편이 담긴 동인지 사이에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묻는 것은 어리석다. 가격은 시장이 정하지만 가치는 영혼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여시 6집을 향한 그들의 항해는 2026년이라는 SF 소설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아직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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