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by 김경훈

중고 거래 앱을 들여다보다 보면 우리 사회가 애써 숨겨온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아이가 신던 운동화를 3천 원에 내놓으며 살림에 보탬을 찾고, 다른 누군가는 4억 500만 원짜리 명품 시계를 매물로 올린다. 이것은 단순히 물건의 가격 차이가 아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대지 자체가 거대한 단층처럼 쩍쩍 갈라지고 있다는 정황 증거이다.



자스민 향기 너머의 계급도


백화점의 VIP 등급은 해마다 그 문턱을 3천만 원씩 높여간다. 현대백화점은 기존 최상위 등급인 자스민 블랙보다 높은 자스민 시그니처를 새로 만들었다. 한해 1억 5천만 원 이상을 써야 블랙이 되는데, 시그니처 회원이 되면 발레파킹을 맡긴 차조차 블랙 회원보다 먼저 출차되는 특권을 누린다. 1년에 2억 원을 쓰고도 최고 등급인 트리니티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이제 흔한 일이다.


돈의 보따리가 커지는 것은 경제 성장에 따른 유동성 증가로 볼 때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10년 전에는 연봉 1억 원이면 상위 1%의 성공한 삶이었으나, 지금 그 반열에 들려면 연봉 3억 4,630만 원을 넘어야 한다. 연봉 1억 원 이상 수령자가 140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는 우리 사회의 부가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평균이라는 이름의 통계적 할루시네이션


대한민국 근로소득자의 평균 연봉은 4,500만 원이다. 하지만 이 숫자에는 함정이 있다. 상위 2만 명의 고소득자가 평균 10억 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으며 전체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의 거품을 걷어낸 중위 소득을 살펴보면 연봉은 3,417만 원으로 쪼그라든다. 한국의 평범한 월급쟁이가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사실 284만 원이다.


자산 격차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 극적이다. 2024년 주식 매매로 발생한 전체 수익 24조 4천억 원 중, 단 0.1%인 210명이 13조 4천억 원을 가져갔다. 나머지 99%의 국민이 5조 원을 나누어 가질 때, 소수의 승자들은 부의 과실을 통째로 집어삼킨 셈이다. 소득의 격차는 자산의 격차 앞에서 그저 소박한 전조 현상일 뿐이다.



순대국과 타마유라 사이의 거리


물가는 치솟지만, 우리 이웃들의 구매력은 제자리걸음이다. 대전의 어느 동네 이발소 커트 비용은 여전히 9천 원이고, 시장통 실내복 세 벌은 4만 원이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의 순대국 가격이 1만 2천 원에서 더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터미널을 이용하는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바로 옆 호텔 식당의 점심 한 끼가 18만 원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겨우 1%를 넘겼고, 최근 분기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골목상권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다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금융 자산 10억 원 이상을 가진 부자가 15년 만에 13만 명에서 47만 6천 명으로 급증했다. 경기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부의 흐름이 특정 층에 고여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건물주라는 이름의 종착역


노동의 가치가 지대의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다. 압구정의 아파트 한 채가 10년 만에 80억 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는 현실 앞에서 모든 이의 꿈은 결국 건물주로 귀결된다. 축구선수도, 의사도, 가난한 사람들이 내는 이자를 받아내는 건물주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런 불균형을 고쳐보려 하면 이념의 잣대가 들이대어지고 변화는 가로막힌다. 하지만 우리가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이 격차의 시대를 묵인하고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15년 전보다 부자들이 가진 금융 자산은 3배 가까이 늘어 3,066조 원에 달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정말 경기가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격차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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