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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01. 2022

퇴사에 대처하는 회사의 자세

『자,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별에도 준비가 필요하지

  그럴 리 없어 내 사랑만큼은

  특별하다 생각하면 오산~』


  가수 이승환 형님이 1995년에 발매한 정규 앨범 4집 수록곡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노래의 가사다. 세상에나 그게 언제 적 노래야 싶으시겠지. 당시만 해도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 세태를 반영한 최신 경향의 노랫말이었다. 제목이 직접 시사하는 바대로 연인의 태도 변화를 통해 이별을 직감한 화자가 그것에 대처하는 담담한 마음가짐을 노래했다. 요즘처럼 광속 연애와 이별이 가능한 시대라면 남녀가 헤어지는 데 뭘 굳이 준비까지 해야 된댜, 싶을 수도 있겠다.


  며칠 전 옆 부서 직원이 퇴사했다. 나는 퇴사의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평소 큰 왕래가 없긴 했다만 며칠째 안 보인다 싶었다. 다른 직원과 사담을 나누다 우연찮게 알게 됐다. “아, 팀장님 모르셨나 보군요. 그 친구 지난주에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그날 짐 정리해서 퇴근하고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대요. 헐~.” 인사하러 다닐 경황도 없었구나.


  자초지종은 이렇다. 직원이 최근 다른 회사로 이직을 결정했다. 팀장에게 먼저 알리고 팀장은 상급자인 본부장에게 보고하는 게 엄연한 절차다. 직원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며칠 더 출근하며 다른 부서원에게 업무 인계인수를 마치겠노라 의사를 밝혔다. 팀장과 본부장이 상의 끝에 더 나올 것 없고 당장 책상 정리해서 퇴근, 아니 퇴사하라고 했단다. 나머지 퇴사 수속은 전화 통화로 인사 부서와 왕래하라면서.


  직원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저 홀가분했을까. 에라, 성가신 것 더는 신경 안 써도 되고 차라리 잘 됐네, 싶었을까. 만일 그렇다 해도 처음부터 그런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럴 사람이었다면 며칠 더 출근하겠다며 수고를 자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폐 끼치고 싶지 않았을 테다. 딴에는 저로 인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끝까지 소임을 다하고, 떠나는 모습도 훌륭했던 사람으로 인상 지우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실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전에도 회사는 퇴사 의사를 밝힌 이들을 이런 식으로 처우했다. 비단 내가 일하는 본부뿐만이 아니어서 비슷한 사례를 왕왕 접했다. 자기 아이디어로 실행한 기획으로 크게 성과를 낸 직원이 있었다. 오래오래 회사에 남아서 매출에 기여하는 아이템을 쭉쭉 생산해주면 좋았겠지만 외부의 솔깃한 제안에 흔들리는 것 또한 회사원의 숙명. 결국 다른 회사로 가게 됐다고 들었다. 마침 직원이 다른 동료와 후속 기획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갈 때 가더라도 아끼는 동료가 처음 자기 이름을 내건 기획의 준비를 함께 완수하고 싶었다. 회사는 냉담했다. 그런 호의 필요 없고 당장 짐 챙겨서 나가라고 통보했단다.


  회사의 심산을 모르지 않다. 명분과 목적도 처음 어느 시점에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 이런 것이리라. 떠나기로 마음먹은 직원이 더 다녀봐야 좋을 게 없다, 주변 동료들의 근로 의욕을 헤치는 등 악영향만 확산할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지, 되지 못할 싹은 일찌감치 잘라내는 게 맞다, 더불어 결연한 회사의 의지를 보여준다, 떠나는 너 없이도 회사는 아무 문제없다, 괜히 더 기웃거리지 말고 냉큼 물러가거라, 너는 회사에게 악연이었다, 우리의 관계 따위 조금도 더 끌지 말자, 당장 오늘 끝내자, 롸잇 나우!


  어디서 많이 보았다. 배신자는 처단한다, 바로 ‘조폭’의 방식이다. 실제 조직폭력배들의 생리가 어떤지는 몰라도 지난 2000년대까지 흥행한 국산 누아르 영화를 통해 익히 접한 바 있다. 감히 네가 우리 조직을 떠난다고? 네가 패밀리를 떠나서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배반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여봐란듯이 보여주겠어, 자, 여기 잘 봐 두라고, 너희들도 배신하면 똑같이 이렇게 된다 말이다, 알겠어? 다만 차이가 있다면 깍두기 형님들의 세계는 폭력을 수반한 협박으로 어떻게든 조직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회사는 그럴 마음이 없어 뵈기는 한다. 아무렴 진짜 깡패들보단 뭐가 달라도 달라야지.


  문제는 퇴사하는 직원이 증오와 적개심을 품게 하는 데 있다. 그런 모양새로 떠나는 직원이 회사에 대해 좋은 마음을 품을 리 만무하다.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정과 정성을 다했는데, 벌이 하려고 회사 다닌 건 맞다만 받은 것 이상으로 애쓴 사람이 바로 나인데, 그런 나를 회사가 이렇게 대우해? 어디 두고 보겠어! 이런 직원은 문을 나서는 순간 그동안 몸담았던 회사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뚜렷한 에너미(Enemy)가 된다. 업계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 한 그가 나가서 자신의 전 직장에 대해 어떤 악평을 늘어놓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니 스트리밍 서비스다.


  정반대의 한심한 경우도 목격했다. 아직은 팀원 신분이던 시절, 같은 팀 후배가 역시 다른 회사로 이직을 결심했다. 팀장이 본부장에게 보고했다. 당시 본부장은 인사발령을 통해 후배와 같은 시기에 타 본부에서 소속을 옮겨 왔다. 후배를 각별히 여겼다. 아끼는 부하 직원이 자기 품을 떠난다는데 냉정한 홀대는 없었다. 오히려 성대한 환송회를 준비시켰다. 본부 구성원 여럿을 동원해 후배의 퇴사일 저녁 비싼 식당에서 단체 회식을 겸하게 했다. 그 자리에서 본부장과 후배가 나눴던 대화는 다시 생각해도 형편없기 짝이 없다. 본부장이 마침 후배가 옮겨갈 회사에서 젊은 시절 일했다고 들었다. 자기 케케묵은 과거 활약상, 그 회사의 조직 문화, 업무 처리의 특장점 따위는 뭣 하러 그렇게 장황하게 얘기하는가. 후배가 경력 채용 면접에서 어떤 훌륭한 답변을 했기에 입사 통보를 받았는지는 대체 왜 물어보는 것인가. 내일 아침에도 이 회사로 출근해야 할 여러 구성원들이 그런 얘기를 옆에서 왜 듣고 있어야만 하는지 참담할 뿐이었다. 정히 떠나는 내 새끼를 보듬어주고 싶었다면 겨우 서너 명 남짓 모아 조촐한 점심 식사 정도로 갈음하는 게 적절했다.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 좋다. 일관된 태도로 꾸준한 사람은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경외의 대상이 된다. 회사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변소 갈 때와 올 때 마음 다르다는 속담은 냄새나는 그곳에서만 유효한 얘기였으면 좋겠다. 처음과 끝이 같은 회사, 그런 회사가 좋은 회사다. 바꿔 말하면, 퇴사자를 대할 때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입사자에게 하듯이 하면 된다. 그렇다면 입사자는 어떻게 대하느냐. 모먼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 진실의 순간을 되새긴다. 우리는 무엇이든 첫 대면의 순간에 지배적인 인상을 가진다. 구성원과 회사가 만나는 순간도 다르지 않다. 최대한 정돈되고 깔끔하게 입사의 프로토콜, 그 가운데 입사자가 앞으로 해야 할 일, 거두어야 할 성과에 대해 안내한다. 이제 수습 기간을 시작하는 것이므로 아직 온전한 우리 편은 아니다. 수습 기간의 성과에 따라 정식 입사를 거부할 수도 있다. 개인인 입사자도 마찬가지다. 이 조직은 나와 맞지 않는다 싶으면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과도한 친절이나 상냥함은 요구하지 않기로 한다. 한 마디로 절차에 따라 ‘나이스’ 한 게 최선이다. 이러한 태도가 석별의 현장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옳다. 퇴사자에게 역시 지나치게 상냥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나간다는 사람에게 못 되게 굴어서 철천지원수로 만들 까닭은 더 없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지금까지 수고한 것에 대한 반대급부의 수준으로만 배려하면 된다. 그것이 개인 대 조직, 조직 대 개인이 가져야 할 나이스 한 태도다. 진실의 순간은 만남의 끝에서 더 강렬하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얘기로 가져오자. 책임감 있는 마무리를 원하는 직원에게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의 태도를 치하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 다음 그가 다른 동료들이 동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했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떠난 이들의 공공의 적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떤 회사는 퇴사하는 직원들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곳도 있단다. 일하는 동안 고마웠고 앞으로 꽃길만 걸으라는 뜻에서. 그런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냥 기본만 하자, 기본.


  이승환 형님의 노래 후렴 구절 가사는 이렇다.

『있을 때 잘해주기

  떠난 뒤에 미련이 남지 않게

  구차하게 굴지 말기

  어쨌거나 사랑했던 기억으로

  담담따라리라라~』

  퇴사하는 그대도, 보내는 회사도, 우리 서로 구차하게 굴지 말기로 하자. 어쨌거나 사랑했던, 아니 열정적으로 일했던 기억으로. 담담따라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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