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Hoon Jan 06. 2023

팀장이 도로 팀원 되면

  인사팀에서 정기 인사발령을 공지했다. 나는 전과 동. 하던 것 계속하면 되니까 부산스러울 일 없어서 좋다. 한데 만날 같은 일이니 권태로운 것도 사실이다. 나도 한 번 다른 일 시켜달라고 해볼까. 아서라, 하던 거나 잘하자. 마음 다잡는다.


  이번 판에 큰 변화는 무엇일꼬. 사령 내용을 찬찬히 훑으며 마우스 휠을 굴린다. 그러다 탁 멈춘다. 저쪽 본부 팀장들이던 G 선배와 J 선배가 옮겨가네. 가만 보자, 그럼 후임이 누구냐.. 오, 선배들 밑에 팀원으로 있던 내 동기 S와 후배 K구먼. 두 선배들은 어디로.. 으잉? 어디 딴 데 안 가고 자기 팀에 팀원으로 남는다고?!


  G 선배와 J 선배는 각각 국장급, 부장급으로 50대 중반과 초반 나이다. 내가 속한 회사 조직은 직급과 직책을 별개로 운영한다. 차장, 부장, 국장 따위 낱말 뒤에 ‘급’을 붙여 이 직원이 이 정도 경력 연차입네 표시한다. 파트장, 팀장, 본부장 등이 실제 조직도에서 일정 영역을 책임지는 직책자다. 팀 안에 차장급 팀장, 부장급 팀원이 가능한 구조다. G 선배와 J 선배 모두 한 부서에서 팀장으로 오래 근무했다. 그 시간만큼 S와 K 역시 두 팀장 휘하에 있었다.


  내가 지휘하던 팀원이 나의 팀장이 된다. 반가운 상황일 수 있을까. 솔직히 얘기하면 살 떨리고 아찔하다. 팀원도 팀원 나름이지.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 가족끼리면 몰라도 회사에서는 아니다. 깨물어서 안 아픈 정도가 아니라 제 손으로 확 끊어내고 싶은 손가락마저 있을 수 있다. 내가 그렇다. 업무적으로 탐탁지 않은 팀원이 있다. 갑질이나 직장내 괴롭힘이 아닌 범위 안에서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 마음속으로 내게 칼날 같은 적개심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그가 어느 날 내 팀장이 된다면? 상상의 도입부부터 참혹하다. 그의 입장에선 화려한 복수의 서막일 테다.


  “Hoon 팀원, 이리 좀 와보세요, 왜 업무 결과가 이따위죠? 형편없기 짝이 없네요. 일 좀 성의 있게 하라고 몇 번이나 말합니까. 근무 시간에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오늘 출근은 몇 시에 한 거죠?” 상사가 된 그로부터 돌려받는 잔소리는 그야말로 끔찍하다.(물론 나는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인 팀장은 아니다, 단연코!) 무엇보다 연중 두 번 있는 평가 면담 때를 가정하면 더없이 몸서리가 쳐진다. 입장이 뒤바뀌어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릴 각오가 도무지 서지 않는다. 차라리 면담 없이 그냥 최저 등급을 부여하라. 아니 차라리 죽여 달라.


  G와 J 두 선배는 나 같은 형편은 아니리라. 두 사람은 도량이 넓어서 팀원 모두를 아우르는 품성이다. 팀원 누구를 미워하는 일도, 그로부터 미움을 살 일도 없을 인물들이다. 그런 그늘 아래 있어 온 S와 K는 또 어떠한가. 신의 있고 사려 깊어서 누군가에게 원한 품을 그릇이 아니다. 위치가 바뀌었다고 팀장이었던 선배들에게 함부로 할 리가 없음은 물론이다. 회사도 마땅히 인사이동 전에 두 선배에게 거취를 물었을 것이다. 어디 다른 데 가느니 잔류하는 게 낫겠다고 어련히 판단한 결과일 터. 불편한 동거가 될 것 같았으면 두 전임과 두 후임이 한 목소리로 재고를 요청했을 것이다.


  네 사람이 이상적인 세대교체를 증명하리라 믿는다. 팀원이 된 전임 팀장, 선배는 팀원이었던 후임 팀장을 직책자로서 인정한다. 사사로운 공간에서는 편하게 너나들이하다가도 공적인 자리라면 격에 맞게 대우한다. 팀장이 된 후배는 팀장이었던 선배 팀원을 전보다 더 깍듯이 예우한다. 손에 얻은 작은 권한을 과시하지 않고 선배의 지혜를 구한다. 선배 저 좀 많이 도와주세요, 제가 잘할게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팀워크가 깨어지지 않는다. 거창한 경영학 용어로 뭐라더라,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두 선배가 지금보다 혈기 왕성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업무 회의에 열정적으로 임하던 모습, 함께 간 1박 2일 워크숍에서 장기자랑에 투혼을 불사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한 세대가 저문다. 서운하고 먹먹하다. 동기와 후배가 새롭게 직책자가 됐다. 새 시대가 열린다. 그건 또 분명 반갑고 기대되는 일이다. 본격적인 세대의 교체, 가까운 데에서 일어났고 나에게도 언제고 닥칠 일이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팀장이 팀원으로 내려오는 일이 회사 안에서 더 흔해지는 흐름이다. 더 오르지 못하면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법. 산마루가 그렇듯 높은 자리는 지 않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으려면 다시 산허리 어디쯤으로 내려와 비바람을 피할 수밖에. 내 몸 의탁하여 쉬 누일 수 있는 곳, 결국 위아래로 손 뻗을 수 있는 동료들뿐이다.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너무 높이 올라가서 산신령이 된 분들 말고. 그 점을 새삼 받잡아 이제부터라도 휘하의 팀원, 인접한 선후배 동료들에게 날 세우지 말아야 하겠다. 태어나기를 살가운 사람은 되지 못했으니 나로부터 나와서 향하는 말 한마디라도 선득하지 않은 온도이기를. 새해에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