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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02. 2023

변해가는 그대

  따뜻했던 온도가 식어가는 것, 나를 향한 마음이 변했음을 알아채는 것은 서글프다.


  밥공기보다 작은 국그릇 세 개가 테이블 위에 내린다. 노랗게 우러난 콩나물국이 조금씩 담겼다. “찌개 안 시키셨죠?” 나와 팀원 둘, 우리 셋 앉은 안쪽 홀을 담당하는 종업원 아주머니가 묻는다. 답하여 고개를 가로젓는 찰나 얼른 국그릇을 쟁반 위로 도로 거두어 간다. 그냥 주시면 안 되느냐 되물었다. 아주머니 단호한 얼굴로. “모자라서 안 돼요. 이건 찌개 안 시킨 손님들만.” 괜한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일순 무안했다.


  그것이 서운함으로 바뀐 것 역시 찰나다. 아니, 중국집 짬뽕 국물 그릇만 한 콩나물국 좀 더 준다고 그게 모자라나. 그만큼도 없어서 점심 장사 어떻게 한대. 음식은 모름지기 인심 장사 아닌가. 그까짓 것 뭐 그렇게 아깝다고, 나 같으면 기왕 가져온 것 이것도 맛있게 드시라, 인심 한 번 쓰겠구먼. 12년 단골손님의 충성도에 빗금이 가는 건 거창한 사연 때문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 팀원 둘이 사무실에 남았다. 파티션 너머로 점심 사줄까 물었다. 웬일로 둘 다 끄덕인다. 여성 팀원에게 뭐 먹고 싶은지 물었다. 또 어인일로 집 밥 같은 것이 먹고 싶단다. 파스타, 피자 아니고? 팀장 배려하지 말고 진짜로 당기는 걸 고르라고 세컨드 찬스를 부여한다. 정말 밥이 먹고 싶단다. 그래, 오랜만에 길 건너 백반 집 가자. 셋이면 그 집 잘하는 계란찜에 참치김치찌개, 제육볶음, 딱이네. 그렇게 오게 된 식당이었다.


  음식은 여전히 맛있다. 뚝배기 하나엔 통깨와 쪽파 고명을 올린 노란 계란찜 봉분이 높게 솟았다. 다른 뚝배기엔 흩어질 듯 폭 익은 이파리에 듬성듬성 참치 살이 보이는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다. 길쭉한 접시에 담아 굵고 고운 고춧가루를 모두 써서 조리한 빨간 돼지고기 볶음이 먹음직스럽다. 겉절이 김치, 어묵볶음, 콩자반, 콩나물 무침으로 곁들인 밑반찬도 소담스럽다. 직장 생활하느라 정작 집에서는 못 먹게 된 집 밥의 원형이다.


  맛있게 밥공기를 비우던 중 밑반찬이 바닥을 보인다. 여성 팀원이 홀 담당 아주머니 두 분 가운데 적당한 호출 타이밍을 고른다. “여기요, 저희 반찬 좀 더 주세요.” 소음에 묻혔을까,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남성 팀원이 데시벨을 높여 다시 부른다. 가까운 쪽 아주머니 한 분이 흘끔 돌아보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가만, 요구사항을 접수했다는 표시이긴 한 건가. 팀원들과의 즐거운 점심 식사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암만 기다려도 새 반찬은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분명 봤고 들었을 텐데 안 갖다 주네요. 됐어, 그냥 이것만 먹고 나가자. 섭섭하고 야속해서 아주머니들 동선을 좇는다. 아주머니 한 분은 여기저기서 부르는데 대답만 하고 금방 테이블로 찾지 않는다. 한 번에 효율적으로 서브하지 못하고 괜한 동분서주다. 다른 아주머니는 그나마 그렇게 바쁜 동작도 아니다. 표정은 일하기 싫어 죽겠는 그것이다. 불러도 대답 없던 이가 바로 그녀다. 우리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어서 여기저기 호출이 먹통이고 주문이 꼬인다.


  팀원들아, 이 집 전에는 안 이렇지 않았냐? 그러니까요, 거 참. 공감대를 확인한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안경을 치켜올린다. 딴에는 매서운 눈빛이 되어서는. “확실히 예전과 달라. 이 집 메뉴가 사실 이렇게 홀이 정신없을 게 아니거든. 테이블 위에서 불을 쓰길 하냐, 물을 쓰길 하냐. 쟁반에 올려서 한꺼번에 풀어놓고 가면 되는 것들이잖아. 뚝배기나 따로 오르는 정도일까. 음식 맛은 그대로인데 서빙하는 아주머니들 테크닉이 영 안 받쳐주네. 게다가 잘해보려는 의지도 없어. 배렸네, 이 집.” 팀원 둘이 밥술을 가져가며 연방 끄덕인다.


  음식은 인심 장사다. 넉넉하게 주어야 오래가는 사업이다. 요만큼 더 내주면 당장은 손해 같지만 그 손님이 일행을 더 크게 이끌어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말 그대로 소탐 하면 대실 한다. 어디 요식업만 그러한가. 세상에 남의 돈 버는 모든 비즈니스가 멀리 보고 해야 하는 인심 장사다. 콩나물국부터 잘못 됐고 우리 셋은 거기부터 기분이 상했다. 손님 몰려드는 시간, 국그릇 다시 가지러 주방에 다녀오는 것이 그만큼 수고로운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말본새라도 좋아야 옳다. 뜻 없이 툭 튀어나온 말이 ‘모자라서’ 라니. “그냥 드시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면 저분들이 또 기다리셔야 하니까. 바쁜 시간이니까 이해 좀 해줘요.” 이랬으면 무안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시스템이 무너진 탓이다. 앤데믹 무드에 백반 집보다 무언가 다른 요깃거리를 찾는 바람이 불어온 까닭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적어도 이 집 주방 솜씨가 변하진 않았다. 내 수준에서 짚어낼 수 없는 최초의 원인으로 매출 감소가 있었다고 가정한다. 고정 비용을 줄여야 타산을 맞출 수 있다. 주인장 입장에서는 가장 손쉬운 것이 인력 감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낯익은 베테랑 아주머니들이 서넛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고임금의 경력자를 내보내고 저렴한 초급 인력으로 교체한다. 당연히 손발이 안 맞는다. 주방과 홀 사이 업무 회전에 부하가 걸린다. 일에 치인 홀 직원 중에 근로 의욕이 쉬 꺾이는 이도 나온다. 홀 안에서의 손님 응대가 점점 더 소홀해진다. 충성적 고객이 떨어져 나간다. 이른바 빈곤의 소용돌이에 갇히는 셈이다. 수익성은 계속 나빠지고 그 탓에 경쟁력도 악화일로를 걷는다.


  사람의 반응은 대체로 엇비슷하고 시장은 냉정하다. 본래 오후 1시가 다 돼서도 대기 줄이 긴 식당인데 열두 시 반 남짓한 이 시각 벌써 빈자리가 뻥뻥 뚫렸다. 우리 셋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라는 증거다. 입구 앞 계산대를 지키는 중장년의 주인장은 들고 나는 손님 무리에게 혼자서만 상냥하다. 조금 전까지 아비규환이었던 홀 안쪽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해 못 할 부처의 미소다. 저렇게 마음 놓고 계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안타까움이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 같은 찜찜함으로 남는다.    


  신용카드를 내밀어 밥값을 치르면서 대단히 공손하고 정중하게 한 말씀드렸다. “사장님, 길 건너 회사에서 일하면서 지난 2011년부터 이따금씩 오는 직장인들인데요, 이런 말씀 처음 드려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전까지 저 안쪽이 엉망이었습니다. 주문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요, 다른 음식이 나오고, 필요한 게 있어 부르면 대꾸조차 없습니다. 밑반찬 보충해 주시는 것 기다리다가 포기했고요. 저희만 그런 것도 아니어서 다른 테이블도 형편이 같더라고요. 주제넘습니다만 사장님께서 위기감 가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홀로 끝까지 상냥한 주인장은 꾸벅 고개 숙이며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다, 특별히 다시 돌아보겠다, 대답한다.


  사람만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세상에 모든 변해가는 것을 마주하는 일은 사무치게 슬프다. 처음과 달라서, 그 처음을 쉽지 않았을 가운데 오래 유지하다가 끝내 내려놓는 오랜 단골 식당을 보노라면 괘씸하기보다 안타깝고 안쓰럽다. 남은 미래는 딱 두 갈래뿐이다. 모든 것은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에게 달렸다. 발에 치일 어떤 뜨내기손님이 듣기 싫은 흰소리 하고 네, 하면 지금과 같다가 명멸할 것이고 충성도 있는 고객이 하는 말이니 새겨볼 것이 있겠거니 싶으면 변화의 작은 단초가 될 일이다. 주인장의 상냥함이 돈 주는 손님을 상대하는 용도로만 장착된 것이 아닐 것을 믿고 극적인 반전과 원상 복구를 기대해 본다. 저 식당 없어지면 안 되거든, 삐까번쩍 마천루 사이에서 저만한 집 밥 어디서 맛보라고.


  팀원들과 잠시 걸으며 오늘의 점심 식사를 마음의 양분으로 소화한다. 반면의 교사, 타산의 지석으로 삼는다. 그래, 나도 동료들에게 터무니없게 인심을 아끼진 않았는지, 간절한 호명을 외면한 적은 없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짜증 유발자가 되진 않았는지, 팀장으로서 시스템부터 살피지 못해 일을 그르친 일은 없는지 돌아본다. 이 사이에 분명 큼지막한 고춧가루가 끼었을 텐데, 들어가면 개운하게 양치질부터 해야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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