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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28. 2020

세 가지 꿈

  어제 길 건너 외국계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대학 후배와 저녁 자리를 가졌습니다. 코로나를 뚫고 만나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습니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다 문득 꿈 얘기가 나왔습니다. 형도? 너도! 하면서 둘이 손뼉을 마주쳤습니다. 저와 후배는 세 가지 비슷한 꿈을 이따금 꾸고 있더군요. 정확하게는 그냥 꿈이 아니고 악몽입니다.

     

  처음은 군대 꿈입니다. 저와 후배 말고도 군대 다녀온 남성분들은 주기적으로 꾸는 꿈일 겁니다. 저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꼭 군대에 ‘다시’ 갑니다. 처음 입대가 아니고 반드시 재징집 되는 꿈입니다. 더 억울한 건 이미 병역을 마쳤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줍니다. 증명해내라, 요구 받지만 입증할 길이 없습니다. 한참을 속 끓이다가, 국방부 시계는 그래도 간다, 체념하며 군생활 2회차를 현실로 받아들일 때쯤 꿈에서 깹니다. 식은땀으로 푹 절어있는 채로요.

     

  다음은 옛 연인이 등장하는 꿈입니다. 지금의 처를 만나기 전에 아주 여러 사람과 만나온 것은 아닙니다만, 신기한 건 어느 특정인의 모습이 아니라 뭉뚱그려진 하나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로 나타납니다. 헤어짐의 현장입니다. 그녀가 나를 떠나려고 합니다. 버리고 간답니다. 백 마디 말로라도 잡아보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꾹 참느라 목이 메어올 때 깨어납니다.

     

  마지막은 시험에 관한 꿈입니다. 졸업반 정도 되는 학기의 기말 시험인데 시험장을 못 찾고 헤맵니다. 모교 도서관이나 단과대, 타학과 강의실을 전전긍긍합니다. 어찌어찌 강의실을 찾노라면 벌써 시험이 끝나있습니다. 난 망했어, 이번 생은 실패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듯싶으면 깹니다. 창피하지만 깨어나서 얼굴을 훔쳐보면 눈물이 맺혀있을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세 가지 악몽을 따져보면 이런 것 같습니다. 군대 꿈은 구속, 떠나는 연인은 상실, 시험이란 성취에 대한 불안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의 의식과 무의식 저간에 얼굴을 달리하는 그 모든 불안이 도사리고 있어서 꿈에서 슬쩍 고개를 내미는 듯합니다. 아내가 늘, 오빠는 철이 없어서 안 늙나보다, 하는 말로 핀잔을 대신하는데 제 안에도 나쁜 꿈을 꿀 만큼의 압박감은, 양심은 있었나 봅니다.  

   

   정도 나이가 되면 말 그대로 미혹됨이 없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합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나고 심기가 뒤틀립니다. 시기와 질투심에 휘둘리기도 일쑤입니다. 울 아부지 마흔살에는 나 같지 않았을 터인데, 스스로가 한심하고 원망됩니다.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은 시립 도서관이 지난 주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제 안에 불안을 조금이라도 떨치려 책 한 권을 빌려왔습니다. 새로 출간된 법정 스님의 법문집 「좋은 말씀」입니다. 책 제목의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불자 한 사람이 스님이 쓰신 책을 내밀며 “스님,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좋은 말씀 하나만 써 주세요.“라고 부탁하자 스님이 책 한 귀퉁에 친필로 ‘좋은 말씀’이라고 쓰셨답니다. 동석한 사람들이 그 글귀를 보고 파안대소했답니다. 저도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책에서 직접 불안을 떨치는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조금은 불안이 가시게 됐습니다. 스님의 여러 말씀 가운데 ‘맑은 가난’, 즉 청빈이라는 낱말이 마음의 채에 걸러져 남았습니다. 부러 찾아서 실천하는 착한 가난이야말로 각자와 전체로서의 우리,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다른 말로는 단순한 삶이어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버리고 나누면서 주위 환경과 하루 일과를 단순하게 해야 맑은 가난을 실천할 수 있다고도 귀띔해주십니다. 오른손에 쥔 페이지가 얇아질 때쯤 되니 스님의 베스트 셀러 「무소유」의 프리퀄을 읽었다는 감상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다음에 또 비슷한 꿈을 꾸게 되면 이번에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병역의 사실을 개인인 내가 왜 증명하느냐, 군복 입고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허술하냐! 제가 따져 묻고 싶습니다. 나 버리고 간다는 그녀에겐 그래, 잘 가라, 난 잘 살 거다, 그래도 네 덕에 내 청춘이 알록달록 빛났다, 너도 잘 살아라! 당당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시험장에서는 조교나 교수에게 시험에 늦은 건 내 잘못이지만 작은 기회라도 다시 달라! 요구하고 싶습니다. 구속과 상실, 성취에 대한 그 모든 불안을 더 잘 떨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좀먹는 불안이여, 썩 물럿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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