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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Nov 10. 2018

11월 11일 빼빼로데이가 돌아왔다

가격보다는 마음

유통업에 종사하는 나에게 빼빼로데이는 상당히 중요한 이벤트다. 남들에게는 그저 그런 날인지 모르지만, 행사기간 동안 매출 규모가 상당하다. 그래서 빼빼로데이를 일 년 농사라 비유하기도 한다. 빼빼로데이에 판매가 잘되는 해는 농사가 잘되었다. 요일 지수나 날씨 영향으로 판매가 안 되는 해는 농사 망쳤다고 한다.


연중 주말근무와 야근이 당연시되기도 하는 빼빼로데이. 유통 밥을 먹기 전부터 11월 11일은 의미 있는 날이었다.


그때 정말 고마웠어

빼빼로데이를 처음 인지한 것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빼빼로를 주는 날이라고 설레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에게 빼빼로를 주려고 샀는데 쑥스러워 주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아이들끼리 빼빼로를 주고받았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데 같은 반 여자아이 한 명이 빼빼로를 내밀었다.


"아.. 고마워. 빼빼로 하나도 못 받는 줄 알았어"

"여기 받았잖아. 맛있게 먹어"

"나도 줄게 있어"

"이거 나 줄려고 산거야?"

"응"

"고마워"


거짓말을 했다.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 마음에 두고 있던 아이가 아니었지만, 너무 고마워서 준비했던 빼빼로를 줬다. 그렇게 별로 친하지 않았던 아이와 빼빼로를 서로 주고받았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처음 받는 빼빼로는 의미가 있었다. 잊히지 않는다. 그 빼빼로를 한동안 먹지 않고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

대학시절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선물한 적이 있다. 원래 좋아하면 뭘 계속해주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선물을 하면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워한다. 선물에도 핑계가 필요하다. 빼빼로데이는 충분한 핑계가 된다.


"빼빼로데이라서 준비했어"

"아~고마워. 난 준비 못했는데"

"괜찮아. 담에 커피 한잔 사"

"그래"


5천 원 정도 하는 빼빼로였지만 깜짝 선물에 그녀는 기뻐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같이 커피를 마셨다. 그날을 계기로 몇 차례 데이트를 하며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른들도 빼빼로 받으면 좋아하신다.

몇 해 전 어머니의 직장으로 직접 만든 빼빼로 하트 선물을 가져다 드린 적이 있었다.

"엄마, 주려고 내가 직접 만들었어요. 예쁘죠?"
"바쁠 텐데 이런 걸 뭐하러 갖고 왔어?"


무뚝뚝하게 표현을 잘 안 하셨지만, 그날 저녁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들었다.


"너네 엄마 오늘 하루 종일 기분 좋더라. 학교랑 친구들한테도 자랑하고.."

"역시 드리길 잘했네요"


장모님께도 똑같은 빼빼로 하트 선물을 드렸다.


"장모님 드리려고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이서방 고마워. 이런 것 난생처음 받아"


장모님은 내가 드린 하트 선물을 한참을 손대지 않고 거실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우리 딸이 가서 뜯어먹기 전까지..


그날만큼은 가성비 좋은 초콜릿 과자

널리 알려진 날에 빼빼로를 받으면 기분이 좋고, 못 받으면 속상하다. 그것은 빼빼로 자체를 좋아하고,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호감 있는 사람도 좋고, 친한 친구도 좋고, 가족도 좋다. 빼빼로 하나 슬쩍 내밀어보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서로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면 몇천 원 투자할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상술? 농업인의 날? 가래떡데이?

다 맞는 말이다. 그 상술 덕분에 나같이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사람들도 있다. 농업인들도 생각하고, 가래떡 먹어도 괜찮다. 농업인들은 이날만 생각하지 말고, 평소 때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내 주변에도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다. 피땀 흘려 농사지은 소중한 농산물 얻어먹지 말고, 제값 주고 사야 한다. 조그마한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신경 쓰이고 힘든데, 하물며 제대로 농사짓는 분들이야 오죽할까?



빼빼로데이만큼은 적은 돈으로 사랑, 우정, 의리, 효도 가능하다. 다른 날에는 빼빼로 하나 내밀면 "별 것 아닌 것"이 되지만 이 날만큼은 잘 챙겨주는 센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아직 사지 않으셨다면 집 앞 슈퍼에 나가보자.



 ※ 같이 근무하는 직원에게 자녀에게 주라고 작은 빼빼로를 선물했습니다. 아이가 빼빼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더군요. 역시 주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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