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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Jun 12. 2016

이만하길 다행이다

아이가 다쳤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놀이동산에 갔다. 매표소를 통과하면서 우린 고조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동화 속의 성, 멋진 분수와 예쁜 꽃밭에 마음이 풀렸다. 가족들과 셀카를 찍었고 행복했다.


딸은 성을 향해 먼저 달려갔다.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딸이 분수대 앞에서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나는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몸집이 성인만 한 남자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달려왔고 딸과 그대로 부딪쳤다. 순간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렀다. 딸은 공중에 붕 뜬 채 날아가서 땅바닥에 얼굴이 그대로 처박혔다. 그 모습이 슬로비디오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가 뛰어가서 딸을 안았다. 아내의 어깨 위로 피가 흥건해졌다. 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부딪친 아이도 놀랐는지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쳤지만, 아내와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딸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과 피가 흘러내려 아내의 옷이 붉게 물들었다.


순간 부딪친 아이를 노려봤다. 짧은 순간 고민했다. 정강이 날을 세워서 목을 차 버리고 싶었다.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남자가 뛰어왔다. 물티슈로 딸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었다. 눈에서 살기를 보이는 나를 보며 당황해했다.


저 사람도 아버지고, 저 아이는 자식이다


이성이 돌아왔다. 아내는 반쯤 넋이 나가서 딸을 안고 방황하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딸을 받아 안고, 놀이공원 응급실로 향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노려봤다. 아이의 부모가 머뭇거리며 따라왔다.


응급실에서 간호 선생님이 거즈로 피를 닦아주고 살펴보려 했지만, 딸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딸을 안고 겨우 진정을 시켰다. 놀이동산이고 뭐고 그냥 나왔다. 집에 가고 싶었다. 치과를 가서 검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간호 선생님 말씀에 주변 병원에 연락을 해봤다. 연휴라 응급실만 운영하고 문을 연 치과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은 다시 잠이 들었다. 입술과 잇몸에서 피가 조금씩 났지만, 치아나 얼굴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하게 참아주었던 딸과 차분하게 대처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항상 긴장하고 방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며칠 후 치과에서 검사를 받을 텐데. 딸이 괜찮기를 기도드린다.




※ 지난주에 쓴 글입니다. 다행히 아이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계속 관심 가지고 연락 준 아이의 아버지도 고마웠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는 잠시도 떼어놓으면 안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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