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구두를 닦는 이유
외근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데 눈길이 멈춘다.
얼룩과 먼지가 묻은 지저분한 구두
'그래도 오늘 사람들 많이 만나야 하는데..'
사무실 옆 작은 구두닦이 부스로 갔다. 이곳에는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구두를 닦으신다. 주름 깊게 파인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시는 웃음이 나는 좋았다. 가끔 여기서 구두를 닦는다. 구두닦이 부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사무실로 가져다 줄게요. 들어가 있어요"
"어휴~ 아니에요. 구두 한 켤레 때문에 귀찮으시게.."
"그럼 여기라도 앉아요"
"저 괜찮아요."
앞서 맡긴 구두를 닦고, 이제 내 구두 차례다. 먼저 구둣솔에 구두약을 살짝 발라서 고르게 바른다.
기름과 구두약을 섞어서 솔로 한번 더 닦는다.
솔을 놓고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에 구두약을 묻혀서 다시 구두에 바른다.
스펀지에 있는 물을 찍어서 다시 구두약과 함께 구두에 골고루 바른다.
그리고 다시 구두약을 구두에 바른다.
휴대용 버너가 보인다. 불을 살짝 올려서 구두를 살짝 달군다. 물과 기름과 구두약이 섞여서 광택이 난다.
능숙하게 헝겊을 손가락에 감는다. 빠른 손놀림으로 구두를 닦아낸다.
마치 새 구두가 된 것 같다.
"감사합니다. 근데 하루에 몇 켤레 정도 닦으세요?"
"요새 별로 없어.."
"그럼 2천 원 받아가지고 안 되겠는데요"
"요즘 사람들 구두 안 닦아. 천 원 해도 안 닦을걸"
"그래도 닦는 사람한테 3천 원은 받으셔야겠어요"
이야기를 나누며 지갑에서 천 원짜리 세장을 꺼낸다. 할머니는 손사례를 친다. 쥐어주는 손을 한사코 뿌리치며 웃으신다.
"그럼 자주 닦으러 와. 그래야 구두를 오래 신어"
"네, 저 구두 오래 신어야 해서 자주 올게요"
사실 나는 스스로 구두를 닦을 줄 안다. 대학교 학군단 시절 서슬 퍼런 선배들이 수시로 단화(구두) 검사를 했다. 흰 장갑을 끼고 구두를 훑어서 구두약이 묻지 않거나, 지저분한 구두를 신고 다니면 품위손상으로 동기들을 집합시켰다.(그리고 단체 기합을 받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구두를 닦았다.
당시 동기들 사이에서 구두 광을 내는 방법이 이슈였다.
'물광이 좋다. 불광이 좋다. 솔로 광을 내야 한다. 헝겊이 광내는데 최고다.'
오늘 가만히 할머니가 하시는 것을 지켜보니 모두 맞는 말이다. 우리가 주장하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구두를 닦았다.
10분 남짓한 시간. 능숙한 손놀림으로 열심히 구두를 닦는데 겨우 2천 원. 노력과 노하우에 비해 대가가 너무 혹독하다. 오늘 사람들을 만나며 잘 닦여진 구두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대로 잘 풀린 것 같은 기분이다. 새까맣게 갈라진 손으로 돈을 받으시던 할머니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