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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Sep 23. 2021

나는 뭣이 두려워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나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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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봉으로 오르는 스물한 번째 올레길 마지막 코스를 걷다 보면 하도리 철새 도래지를 지난다. 억새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11월, 난 이곳으로 산책 가는 걸 좋아한다.

 

이곳은 동쪽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이 오면 서쪽 끝 수월봉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강렬한 낙조가 공활한 하늘을 핑크빛으로 짙게 물들인다. 그리고 이 계절에 맞춰 집으로 돌아온 철새들은 아름다운 하늘과 쾌청한 바람을 마음껏 즐긴다.

 

돌하르방이 새하얀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는 계절,

둥근 바람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하면 철새들은 다시 바람 부는 곳으로 먼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성실한 날개가 아닌, 추락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비행하는 새.

새는 어린아이가 그은 거침없는 선처럼 곧게 뻗은 길 위에 올라타더니 벌써 아련해져 간다.

 

한때 내게도 날개가 돋아 여기까지 날아왔건만,

떠날 때를 모르는 건 여기 나뿐이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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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모양의 같은 고민을 안고 같은 길을 걷던 많은 여행자들을 만났다.


어떤 이는 답을 찾았고, 어떤 이는 답을 찾지 못해 여행을 연장했다. 또 어떤 이는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제가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 예전에 자신이 버렸던 오답들을 결국 다시 주워 걸쳐 입었다.


나 또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연장했다. 그러다 <노래하는> 나의 천직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3분 30초의 완벽하지 않은 내 이야기가 같은 고민하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나 충만한 경험이던지. 또 노래를 지으며 발견한 내 기억공간과 그곳에서 방치된 나의 오래된 괴로움들과 하나씩 화해하고 용서를 구하여 지금의 살만한 삶으로 반전된 것은 또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그러나, 구도자가 가장 혼란스러운 마음에 휩싸일 때는 분명 답을 찾았다 생각했던 그 질문 앞에서 다시 처음이라는 기분을 느낄 때이다.


내가 지금 그 기분이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이미 찾은 답을 써내니 질문이 답하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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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아닌 것을 휘둘렀기에 힘을 잃었고, 내 것을 찾음으로 힘이 생겼다. 힘은 성공의 사례를 쌓아갔고, 성취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분명 이전의 기준과는 한 발 더 성숙한 모양이었지만, 이 새로운 기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안과 밖을 나누고, 나와 너를 구분 지었다.


기준이 생겨 판단하게 되고,

기준에 못 미치는 것들 때문에 실망하고,

기준과 다르면 싸움이 됐다.


분명 성숙해 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버렸다.


풍요로운 갑부의 삶을 살다가도 같은 자리에서 크게 넘어져 마음이 가난한 거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모든 반복되는 것에는 몸보다 마음이 빨리 지치는 법. 그때마다 나는 괴로워하며 겨우 일어나 처음 질문을 던진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처음에 섰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세상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이고,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얼굴은 지워져 보이지 않고, 왜 사냐건 그냥 웃는다 말하던 이의 미소를 닮은 사네가 있다. 그리고 먼 길 돌아온 나에게 사네는 말했다.



태어난 것이 얼마나 괴로움인지
동시에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우주 속에 사는 나는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동시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나는 거지처럼 비루하기도, 철학자처럼 탁월하기도,
또는 아무런 것이어도 괜찮고
내 삶에서 내가 차지한 것들은 진실로 그렇게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반대로 이룬 것이 없어 그렇게 비참할 것도 없다는 것을 명료히 보고

나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게 살다 결국 한 줌 흙으로 사라질 테지만,
이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찰나 더 유쾌하게
이 순간을 살아보겠노라 작은 빛을 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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