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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은 오늘을 사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대한민국 여자들은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아버지, 동생, 할머니 순서로 퍼 담는다. 결혼해서는 아버지, 남편, 시동생, 시어머니의 순서로 퍼 담는다. 스위트홈, 가정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을 괴롭힐 때면, ‘그 애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들어야 하고, 1번부터 앞번호는 남자애들, 여자애들에게는 뒷번호가 주어진다. 반장은 남자만 될 수 있는데 후보도 투표하는 아이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중학교에 가서는 남자아이들보다 더 불편한 복장을 더 엄격한 잣대에 맞춰 입어야 하고, 바바리맨을 보고 웃어서도, 바바리맨을 직접 잡아 경찰에 신고해서도 안 된다. 버스 속 몸을 비비는 놈들을 피하는 것도, 등을 쓰다듬는 남자 교사를 피하는 것도 여자 아이들의 일이다. 대들지 말고, 소리 지르지 말고, 피해야 한다. 기억도 안 나는 남자에게 봉변을 당해도 아버지로부터 네 행실 때문이라는 꾸중을 들어야 한다.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뜻이다. 다정했던 남자 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에 진상으로 변하는 걸 보고서는 사람 보는 눈 없는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이 모든 불합리하고 나쁜 일들은 여자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 했다.

 

나는, 여성 교육을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여대’에 다녔지만, 자신을 ‘여자’라는 범주 속에 묶어두려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능력에 따라, 실력에 따라 평가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보다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출생 때부터 결혼 직전까지 나는 ‘여자들’의 진짜 사정에 어두운, 여자의 모습을 한 ‘남자’였던 셈이다.

  

 

내 경험이 『82년생 김지영』과 일치되는 지점은 결혼이다. 남편은 명절 선물부터 복날 수박까지 시댁과 처가에 같은 선물을 준비하는 ‘생각 있는’ 사람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가부장제 사회,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문화에 직접적으로 부딪히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여자’이고, ‘여자’로서의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남편은 결혼 후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받아 부담스러웠겠지만, 적어도 가장으로서, ‘어른’으로서 대접받았다. 나 역시 결혼했지만, ‘대접받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대접해야 할’ 어른들만 늘어났다.

 


근데 왜 선생님 안 했어?”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다 그랬어.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

그럼 선생님 지금 하면 되잖아.”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야 하니까. 다 그래. 요즘 애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살아.”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36쪽)

 



딸아이와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아이는 9살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직장을 다녔다는 것과 지금은 어떻게 이 시간에 우리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는지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엄마의 30대도 한 번뿐이지만, 너의 유아기도 딱 한 번이니까. 엄마는 너를 택했어. 너랑 같이 있기로 했어. 아이는 갑자기 울상이 되어서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인생도 딱 한 번뿐인데, 엄마는 엄마를 택하지. 왜 나를 택했어?”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회사를 가면서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도 무심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좋은 엄마라는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직장을 그만뒀다. 그게 더 쉬웠다.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자신이 맘충이냐고 묻는 김지영 씨의 울부짖음은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의사에게 아이를 ‘지워달라’ 부탁한 김지영 씨 어머니의 울부짖음과 닮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딸아이를 ‘지워야’ 하고, 딸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을 ‘지워야’ 하는 삶이 닮았다. 똑같이 닮아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82년에 태어난 김지영 씨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2019년 현재에도 ‘여자’라는 이름에 묶여 사는 여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여자들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을 읽다 보면 여성의 삶은 30년 전, 300년 전, 아니 3,0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당연한 줄 알고 그렇게 살고, 희생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며, 울음을 삼키며 그렇게 산다.

 

이 땅의 김지영들은 모두, 그렇게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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