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전의 일이다. 국어를 전공하신 젊은 여자 선생님이 한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한문 진도를 마치고 나면 수업보다 재미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칠판 한쪽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종종 칠판 전체를 가로질러 끝없이 이어졌다. 어느 날 ‘세상 사는 이야기’는 ‘인류 초기의 수렵채집 사회는 평등한 사회였다’는 명제로 시작됐다. 잉여생산물의 발생과 사유재산 제도의 시작 그리고 자신의 후손에게 축적된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일부일처제’로의 변화를 설명하셨는데, 선생님이 이 책 43쪽, 엥겔스의 주장을 읊어 주셨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목축에서 발생한 잉여는 남성의 전유물이 되었고 사유재산이 되었다. 이렇게 사유재산을 획득하게 되자 남성은 그것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상속자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다가 일부일처제 가족을 구성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였다. 혼전순결에 대한 요구와 결혼에서의 성적 이중기준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남성은 자손이 적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재산상 이익을 지킬 수 있었다. 엥겔스는 재산의 공동소유에 근거한 과거 혈연관계의 붕괴와 경제단위로서의 개별 가족의 등장이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43쪽)
선생님의 입장이 엥겔스에 가까웠는지 아니면 ‘여성 교환’이 여성 종속의 시작이었다고 해석한 레비-스트로스에 가까웠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부일처제이되 일부다처제로 운영되고 있는 여러 문화 속 사회 제도하에서 여성이 받게 된 피해와 여성에 대한 각종 억압에 대한 설명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선생님의 메시지보다 메신저, 선생님에게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은 예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사랑스러웠다던데, 여드름 대장에 곱슬머리 중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선생님은 한 마리의 우아한 백조 같았다. 하얀 얼굴에 눈, 코, 입이 모두 예뻤던 선생님은 어깨를 지나 허리에 가까울 만큼 긴 웨이브 머리를, 너무나 예쁜 갈색 웨이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우리에게 ‘페미니즘 수업’을 해 주셨건만, 인생 흑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던 우리는, 나는, 너무나도 예쁜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어쩜, 선생님은 저렇게 예쁠까. 저렇게 똑똑하실까. 우리도 선생님이 되면, 선생님 나이가 되면 저렇게 예쁠까, 예뻐질까. 이런 헛된 생각은 나만의 것이었으리라. 예쁜 내 친구들에게 살 길을 허한다.
햇병아리 중학생들이 초짜 선생님을 앞에 두고 진도를 빼먹으면서 인생 공부를 할 수 있는 ‘얘기해 주세요’ 찬스는 1년 365일 가능하지만, 특히 학기 말, 비 오는 날, 스승의 날 전후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그날도 우리는 ‘얘기해 주세요!’ 찬스를 쓰기로 했는데, 그 날의 주제는 ‘프러포즈’였다. 바로 얼마 전에 앳된 외모의 선생님이 이미 결혼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선생님에게 프러포즈받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떼를 썼다. 선생님, 프러포즈받은 이야기 해주세요~ 네에? 마지못해 시작한 선생님의 프러포즈 이야기는 결혼하신 분이 학교 선배라는 데서 시작했다.
중딩들 : 그래서, (그 분이) 어떻게 프러포즈하셨어요?
선생님 : 프러포즈? 내가 했는데? 프러포즈.
중딩들 : (일동 멘탈 탈출) 네? (일동 침묵)
선생님 : 내가 프러포즈했어. 선배, 우리 결혼하자.
중딩들 : (일동 침묵) (또 침묵)
용기 있는 중딩 1인: 그래서요? 그러니까 (그 분이) 뭐라고 하셨어요?
선생님 : 응. 막 울면서 고마워!! 그러더라구.
인류 역사 초기 수렵채집 사회에서 잉여물 발생 후, 사유재산의 축적으로 인한 계급의 탄생과 그로 인한 일부일처제의 도입. 그런 얘기보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내게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이 이야기였다. 여자가 프러포즈할 수 있다니.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니.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짐작하고는 있지만, 좋아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결혼하자고 말할 수 있다니.
중학생이었던 내게, 문화와 교육의 영향 아래 살고, 매스미디어와 언론의 시선으로 똘똘 뭉친 중학생이었던 내게, 선생님의 프러포즈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여자는 다소곳해야 하고, 여자는 성에 소극적이어야 하며, 여자는 ‘꽃’이고 남자는 ‘벌’인지라 여자는 남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믿었던 그 모든 사회적 통념의 혼합체인 내게, 이 예쁘고 앳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쟁취한 용감한 선생님은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자고 했어, 결혼.
<가부장제의 창조>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 거다 러너는 “사회에서의 종속적 위치에 대한 여성의 각성이 오랫동안(3500년 이상) 지연된 이유는 무엇인가(19쪽)”라고 묻고 있다. 무엇이 여성들을 자신을 종속시킨 가부장적 체계를 유지하고, 그들을 종속시킨 체계를 후세에 전하고, 그 체계를 양성의 자손들에게 세대를 이어 전하는 데 여성이 가담하도록 했는가,라고 묻고 있다. 질문에 대한 그녀 자신의 답으로서, 나는 77-78쪽을 꼽고 싶다.
재생산능력의 차이, 특히 여성이 아기를 젖 먹여 키우는 능력의 차이로 인해 최초의 성별 노동분업이 생겨났으며(77쪽), 이러한 생물학적 성차에 근거한 초기의 성별 노동분업은 편리하였으며(functional), 그래서 남성들과 여성들이 다 같이 받아들일 만했다는 것이다. (78쪽)
당시의 척박한 환경을 고려할 때 월경, 출산뿐 아니라 모유수유로만 이루어졌던 양육은 오직 여성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유아의 생존뿐 아니라 일정 정도의 인구를 유지해야 하는 공동체 전체로서도 이러한 여성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남성이 큰 동물 사냥을 하고 아이들과 여성들이 작은 동물 사냥과 식량 채집을 했던 최초의 성별 노동분업은 당시로서는 적합하고 적절한 조치였다.
문제는 이러한 초기의 성별 노동분업이 지속되면서 그것이 이데올로기화 되고, 자궁이 있는 사람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논리로 자궁이 없는 자의 부엌 출입을 막는 형태로 발전했다는 데 있다. 월경과 출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은 관계로 수유에 대해서만 간단히 의견을 밝히자면, 분유를 타서 아이를 먹이고, 트림을 시켜주고, 잠깐 아이를 세워 안아주며, 젖병을 소독하는 일은 성별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모두 알고 있는 일이며, 다만 모른 척할 뿐이다. 그럼에도 농경문화가 정착한 이래로, 아이를 키우는 일과 가사를 돌보는 일은 ‘여성의 일’, ‘여성이 해야 하는 일’로 규정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공동체의 존립 및 유지를 위해 다른 종족의 여성들을 납치하고, 납치된 여성들이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는 과정을 통해 ‘여성의 사물화’가 이루어졌다는 거다 러너의 주장은 농경 사회 초기부터 시작된 ‘가부장제’의 역사를 명확하게 유추해낸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남자는 적극적, 여자는 소극적. 남자는 벌, 여자는 꽃. 이미 우리 일상에 너무 깊이 뿌리 박혀 당연하게 여겨지던 많은 것들에는 역사가 있다.
그런 믿음과 관념, 문화가 시작된 역사가 있다. 그 근본을 밝히고 변화를 촉구하는 일이 한 번의 페미니즘 수업으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변화와 혁명은 평범한 페미니즘 수업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남녀 간의 관계와 지위를 확정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고찰,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남자처럼 여자도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세상에 대한 토론은 페미니즘 수업에서부터 시작된다. 평범하고 재미있는 한 번의 페미니즘 수업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