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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6-1> 조선시대 여성의 삶

 


 

사회 숙제 조별 발표가 있는데, 아롱이는 3조이고, ppt 담당이란다. 다음 주 발표 수업 전에 1차 숙제 검사가 있다. 조선 시대 여성의 삶,이라는 중단원 제목을 보고 나서는 혼자 이렇게 정리를 했더란다. 

 


조선 시대 여성의 삶 – 단 하나의 배역, 어머니. 

 


여성은 ‘어머니’ 이외의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는 것만이 여성의 존재 이유라고 사회 전체가 믿고 있었기에 아이를 혹은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을 집에서 쫓아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아이를 낳는 것만이 섹스의 유일한 이유였기에, 여성은 출산 외의 성관계에 무심하거나 무심한 척해야 했다. 여성의 몸이란 아이를 만들어내는 ‘출산 기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몸가짐은 물론 마음 씀씀이까지 제약받았다. 어머니, 오직 그 이름 아래에서만 여성의 삶은 의미가 있었다.  

 



혼자 너무 나갔다. 오늘의 숙제는 교과서 속 질문에 답을 찾아오는 거란다. 


 

질문 : 여성의 입장에서 친정살이를 하는 것과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쓰면 안 되겠지. 도통 마음에 안 드는 초록색 화면을 켜고 ‘시집살이’라고 넣는다. 

 

 

며느리에게는 오로지 순종과 인내의 미덕만 요구된다. 친정 부모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으로 살라.”든가, “개한테도 ‘예’하고, 소한테도 ‘예’하라.”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시집에서 며느리의 지위는 남편과 동등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시집의 어떤 식구보다 낮았다. 며느리들이 자기보다 더 어린 시동생이나 시누이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 경상도에서는 며느리를 ‘정지꾼’이라 불렀는데, ‘부엌 일 하는 일꾼’을 의미하는 말이다. <시집살이(한국일생의례사전, 국립민속박물관)> 


 

ㅅㅎ언니가 생각난다. 자녀가 셋인 ㅅㅎ언니 막내는 아롱이와 유치원 친구다. 수다 삼매경 중,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말도 마라. 내가 처음 시댁에 갔더니, 국도 안 주더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언니에게 묻는다. “언니, 국을 왜 안 줘요? 국이 부족해서요?” “아니, 국을 주기 아깝다는 거야. 너는 아직 국을 먹을 때가 안 됐다.” 귀하디 귀한 아들이 데려온 셋째 며느리, 자랑스러운 셋째 아들이 데려온 막내 며느리는 아직 국을 먹을 때가 안 됐다. 국립 민속박물관의 보기 싫은 설명과 대한민국 평범한 가정의 믿기 어려운 에피소드는 딱 맞아떨어진다. 시집 어떤 식구보다 낮은 지위, 이게 며느리의 위치다.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은 문학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연구하는 비평 관련서인데, 4장 ‘여성주의 비평’에는 이런 문단이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남성이 독점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데 활용되어 왔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러한 믿음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획득할 교육적, 직업적 수단을 여성에게서 박탈하고 여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래도록 여성의 몫이었던 열등한 위치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아니라 문화적으로 생산된 것이다. (199쪽)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생산된 생각, 즉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어 당연하게 여겨지는 믿음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내면화된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남자가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바뀌었다. 21세기, 우주에 인공위성을 보내는 시대다. 그런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 말로는 ‘그렇지 않아,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할 테다. 하지만 속으로는 말한다.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 돼. 그래도 반장은 남자여야 돼. 이렇게 말이다. 

 

 

 

조선시대 여성의 삼종지도 그림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오늘날 여성들에 비해 조선 시대의 여성들은 여러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어떤 책이었던가. 정희진은 ‘여성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할 때 그 비교 대상은 조선 시대 여성이다’라고 말했다. 남성들의 삶이 조선 시대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는지 살펴보지 않고, 여성만, 여성에게만 현재와 조선시대를 비교한다는 지적이다. 꼭 삼종지도가 아니더라도 조선시대 여성들이 여러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오늘날 여성들은 조선 시대의 여성들이 받았던 여러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않고 있는가? 이젠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인가. 

 

 

<여성의 삼종지도>에서 소녀, 아내, 어머니는 모두 눈을 내리깔고 있다. 아버지 앞에서, 남편 앞에서, 자식 앞에서 여자의 처신이 어떠해야 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눈을 내리깔아라. 의견을 말하지 마라. 조용히 해라.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를 보고, 왜 이렇게 까칠하게 반응하는가.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다. 아니면 거꾸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왜 이렇게 까칠한가. 

 

내게,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세상은 까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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