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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Dec 31. 2019

포기에도 타인의 납득이 필요한가요?

공무원의 꿈을 포기하기까지

공무원과 로스쿨.

법학과 대학생이 가장 많이 듣는 이 두 가지의 진로가 사회가 말하는 '성공'이라 생각했다. 국민에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재판을 도울 수 있는 '법원직 공무원'은 내가 꿈꾼 이상적인 삶이었다.


법원공무원 시험은 국어, 영어, 한국사를 비롯해 5개의 법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시험은 일 년에 단 한 번만 실시한다. 다른 직렬의 9급 공무원 시험보다 과목도 많고, 병행할 수 있는 직렬도 거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법 공부와 법원이 좋다는 단순한 의지로 시작했다.


진부하게도 나의 공시 생활은 별다를 게 없었다.

해뜨기 전 집을 나와 잠만 자러 집으로 가던 생활의 반복. 새벽 5시 30분 노량진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단어를 외우거나 한국사 인강을 들었다. 아침 7시 영어 특강을 듣고 8시 30분이 되면 학원 옆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먹고 다시 9시 수업을 들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도 식당 한 곳을 정해 그곳에서만 먹었다. 정규 수업은 6시에 끝나고, 특강이 있는 날은 10시, 11시까지도 수업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노량진의 세상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곳에서 이를 악문 나의 노력은 사실 평범한 노력에 불과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한 시험을 두 달 앞두고, 나는 공무원의 꿈을 접었다.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말리는 가족과 친구, 그 어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아까웠다.

간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공무원이라는 꿈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무시받아 마땅한 꿈도 아니다. 그냥 꾹 참고 두 달을 버틸 수도 있었다.


나에게는 그만둬서는 안 되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 모든 핑계를 벗어버리고, 나는 그저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그만둔다는 게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할 이유여야 하는 건지, 남들에게 적당해 보일 사유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 절망스러웠다. 타인의 고통은 함부로 헤아릴 수 없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쉽게 그 고통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보기 위해 참아야 할 두 달을 내가 살아낼 수 있을지 나는 나에게 확신이 없었다.

더 이상은 의미가 없었다.

시험이 두려운 게 아니라 사는 게 두려워지자, 나는 포기를 결정했다.


'왜 나만 흔들리지'

'나만 이렇게 약하지'

삶의 모든 문제를 나의 탓으로 돌리자,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기계처럼 공부만, 일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감정이 있는 인간은 수도 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그 시절 나는, 공부 기계가 되지 못한 나를 미워했다.


'나에게 감정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 벌써 1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 그 시절을 돌아보면 눈물이 왈칵할 때가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열심히 살았던 그 시절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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