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나는 진통실에서 회복하고 있고, 새싹이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NICU(신생아중환자실, 향후 편의상 니큐라고 부른다.)에 입원하게 되었다. 남편은 현재 새싹이의 상태와 입원절차 설명을 듣고, 입원에 필요한 준비물(아기 물티슈, 기저귀)을 사서 전달해 주고 왔다.
1490g, 미숙아 기준으로는 1500g 이하로, ‘극소 저출생 체중아’이다. 29주 차에 태어난 아기 치고는 체중이 좀 나가는 편이고 건강한 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아기가 울어야지 자가호흡이 가능하다는 것을 들었어서,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은 나는 그래도 엄청난 슬픔과 걱정에 빠져있기보다는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34주까지 약물을 투여하면서 임신을 유지한 상태로 입원해 있어야 된다는 부담감이 없어진 데에 대한 후련함도 느꼈다. 후련한 마음은 나의 입원기간이 짧아진 대신 새싹이의 입원기간이 길어졌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바로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내 뱃속에서 잘 놀고 있던 아기의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서 허망함과 쓸쓸함도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아기 생각이 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이 밀려왔고, 내가 아직 출산을 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입원한 이후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통화로 안부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모든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게 흘러갔기에 전화 한 통 드릴 수가 없었다. 약물 투여 부작용으로 분만이 결정되기 직전에는 너무 어지럽고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였기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게 어렵기도 했지만, 이런 일들을 겪고 있는 내 마음이 너무 착잡했기에 부모님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고 하소연한다거나 울고불고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상태였다. 이런 나 대신에 오늘은 내내 남편이 양가 부모님께 상황을 전달했고, 분만이 결정된 후에는 엄마가 대구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고 계시다고 남편이 전달해 줬다.
그 사이에 나는 투여하던 약물도 끊었고,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터라 고위험산모집중치료실 밖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나갔다.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느꼈다. 내가 새싹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니큐 면회는 부모만 가능하고, 하루에 오후 한 시 반~두시, 저녁 일곱 시 반~여덟 시 이렇게 두 차례 30분씩만 허용됐다. 저녁 7시 반 면회를 가야 했기에 빠르게 회복하는 것만이 내 목표였다. 회복하는 동안 폐부근이 뻐근하게 아파와서 혹시나 약물투여로 인한 부작용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CT 촬영을 하였고, 조산방지를 위해 자궁수축억제제를 며칠간 투여하고 있었던 터라 자궁수축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담당의가 30분 간격으로 확인을 하러 오셨다.
다행히 나는 진통실에서 매우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CT 촬영 결과도 이상이 없었으며, 회음부 절제도 없었기에 저녁때쯤에는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고, 대소변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저녁 7시 반, 바로 옆에 있는 니큐에 새싹이를 면회하러 갔다. 새싹이의 머리는 내 손바닥보다 작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이는 내 손바닥에서 팔꿈치보다도 작았다. 이렇게 작은 아기가 코에는 호흡기를 달고, 손과 발에는 정맥주사를, 입에는 위관줄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기의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던 나는 이른둥이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기에 그때까지 아기가 건강하겠지 하며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온갖 구멍으로 줄을 달고 있는 아기를 보는 순간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기를 한참동안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8시가 되어서야 나왔다.
니큐에서 나올 때 간호사 선생님에게 새싹이 입원 관련 설명과 모유수유 교육을 받았다. 미숙아에게는 모유가 매우 중요하고 특히나 초유에는 엄마가 가지고 있는 면역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꼭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면회가 끝날 때까지 니큐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엄마와 시어머님은 남편과 나의 얼굴 기색만 살피셨고, 고생이 많았다는 말씀만 남기시고 병원을 떠나셨다. 나는 회복을 위해 입원실 병동으로 옮겼다. 금식을 오래 지속하다 출산을 했어서 매우 허기졌다. 병원에서 저녁으로 나온 미역국과 갖가지 반찬과 함께 밥을 먹는데 그제야 또 한 번 눈물이 쏟아졌다.
‘아기는 미숙하게 태어나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주사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있는데, 너는 밥이 그렇게도 맛있게 꿀떡꿀떡 넘어가는구나’
나는 그날 저녁 모유수유와 모유유축에 관련된 모든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보통은 출산 직전 출산 후 입원과 조리원에 가서 필요한 물품들을 '출산가방'에 싸서 입원하고, 출산 직후부터 시작되는 모유수유에 관련된 내용도 미리 공부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출산하지만, 나는 출산이 아직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태교 계획만 가득한 상태였다.
보통 출산 이후에 모유수유를 하게 될지 분유수유를 하게 될지를 선택하게 되고, 모유수유가 힘들다는 정도의 지식만 있는 상태였다. 금식하고 있는 아기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모유를 유축해서 가져다주는 것 밖에 없었기에 나에게는 모유수유를 할지 분유수유를 할지는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모유가 안 나오면 어떻게든 나오게 해야 한다!'
출산 후 12시간 이내 손유축이라도 해서 젖을 돌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보고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서 손유축으로 젖을 짜냈다. 방울방울 10cc도 안 되는 양이었지만, 남편을 통해서 니큐에 바로 전달하였다. 모유유축을 위한 유축기와 각종 물품들이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남편에게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면 보건소에서 유축기를 대여해 와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렇게 잠이 들지 않은 밤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