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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Apr 14. 2019

여행, 여기라면 행복할까?3

스위스에서 만난 000

아무 버스나 골라 잡아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리기로 했다.

어디서? 유난히 호수가 아름다웠던 스위스에서.

사실 스위스는 쉬기로 작정하고 간 곳이라 관광보다는 휴식에 초점을 맞춘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이렇다 할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지나다니는 버스를 타고 끌리는 곳에 내려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사실 무계획 버스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1학년 때 동기들과 간 홍콩 여행에서 마음에 드는 버스 하나를 골라 종점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종착역은 평범한 주거지였는데 옆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적당히 시원한 날씨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공원을 걸었던 기억이 꽤 오래가더라. 아직까지도 담백하고 편안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스위스 버스 여행도 내심 기대가 됐다. 이번에는 어디서 내릴지, 내리는 곳은 어떤 곳일지. 그리고 또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였던 풍경
이번 버스의 종착역은 작은 마을이었다

오두막을 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그 앞으로는 맑은 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푸른 호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탁 트인 것 같았다. 조금 더 내려가 볼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작고 귀여운 친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작은 마을에 나타난 낯선 사람이 신기한 것처럼.


까만 털을 가진 예쁜 친구


털에서 윤기가 나는 모양이 아무래도 주인이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사람 손을 타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우리를 졸졸 따라왔다. 사람이 적은 조용한 마을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작은 고양이. 꽤 괜찮은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고양이를 '나비'라고 불렀다. 자꾸 따라오니 말은 걸고 싶은데, 미안하게도 이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고심해서 부른 이름이다. 노란 눈이 나비를 닮았으니까.


스위스의 호수, 탁 트인 시원함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아 아쉽다
저 노란 눈은 항상 호수를 볼 수 있겠지

나비는 호숫가까지 따라왔다. 우리랑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사실 말을 한 건 우리밖에 없었지만. 나비도 우리가 궁금했듯, 우리도 나비가 궁금했다. 어디 사는지, 주인은 있는지, 이런 곳에 살면 어떤 기분인지. 한참을 호수를 바라보다 사진을 찍다 그리고 또 나비를 보다가 문득 나비가 부러워졌다. 고양이도 나름의 고민이 있겠지만 어쨌든 눈을 뜨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으니까.


스위스에서 만난 친구, 고양이 나비는 매일 자신의 샛노란 눈과 대비되는 청량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다시 집으로 향하거나 아니면 동네 마실을 다니거나. 일상이 그런 여유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평화롭고 마음이 편까, 일상이 되어버리는 순간 권태로워 질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순간 우리는 나비가 무척이나 부러웠다는 것이다.






'와 우리 이렇게 지내다가 한국 돌아가면 어떡하냐'

여행 내내 친구와 했던 말이다. 유럽으로 오기 전 둘 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여행을 끝마친 지금은 그때의 기억과 아쉬움이 많이 흐려졌지만 당시에는 돌아갈 생각만 하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차라리 나비가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그때는 고양이가 많이 부러웠지만, 지금 기억의 한편에 부러움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했던 그때의 분위기가 더욱 짙게 남아있다. , 스위스의 그 예쁜 나비가 부럽다고 고양이가 될 수는 없으니. 나는 이곳의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 수밖에 없겠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또다시 이런 버스 여행을 할 날이  것이다.


그때마다 그렇게 하나둘씩 좋은 기억을, 추억을 모아 가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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