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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Mar 17. 2020

내 귀에는 12개의 구멍이 있다

피어싱 8개, 귀걸이 2개, 귓구멍 2개

  언젠가는 꼭 한 번 나의 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여러 신체 부위 중 귀는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키가 작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평균 키보다 작다. 학교를 다닐 때 키 순서대로 줄을 세우면 항상 맨 앞은 내 차지였다. 그래도 덕분에 단체사진을 찍을 때는 맨 앞줄을 차지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의 귀도 굉장히 작다.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을 때 다시 앞으로 넘어오는 것은 예삿일이다. 한 친구는 내 귀를 보고 귤 한쪽 크기 만하다고 한 적도 있다.


  그리고 굉장히 단순하게 생겼다.  사람들의 귀는 저마다 다르게 생겼다. 누군가는 굉장히 편편한 반면 어떤 이의 것은 꽤 굴곡져있다. 나는 귀가 작아서인지 연골이 많은 대신 그 크기가 작다. 그래서 조금 쪼글한 모양새다. 이런 생김은 내 성격과 꼭 닮았다.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지만 그런 잡념들이 오래가지 못한다. 대신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잊혀 생각의 골 사이사이에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편이다.


 그래서 자잘한 스트레스가 많다.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은 모이고 모여 정체를 알 수 없는 '화'가 된다. 그리고 크기가 작아 상대적으로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귀는 화를 풀기에 딱 제격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어딘가 꾹 막힌 듯 한 느낌이 들 때 귀걸이를 뚫고, 피어싱을 뚫었다. 그렇게 뚫은 귀걸이가 2개고 피어싱만 8개다. 원래 가지고 있던 귓구멍 대신 10개의 구멍이 더 생긴 것이다.


  귀에 구멍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장신구를 할 일이 많아졌다. 한동안은 눈에 띄는 화려한 귀걸이와 반짝이는 피어싱을 찾아다니는 것이 나의 소확행이었다. 그렇게 귀를 꾸미고 나면 조금은 '센' 사람이 된 듯했기 때문이다. 귀를 꾸밀 때만큼은 순간의 내가 몇 살인지 상관없이, 새내기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순한 인상을 가려보겠다고 어설프게 진한 아이라인을 그리고 새빨간 틴트를 발랐던 때 말이다.


   요즘 들어 가만히 피어싱이 박힌 귀를 보고 있자면 과거의 나는 생각보다 불만이 많고, 화가 많았으며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 귓바퀴를 뚫을 때 들었던 감정, 왼쪽 연골을 뚫었을 당시의 생각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간에 과거가 희석되어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귀만 보면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다. 더 이상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내기 위해 귀를 뚫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다룰 줄 아는 방법도 알게 되었고 날카롭게 반응하던 것들에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할 줄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태여 뚫은 귀를 막을 생각은 없다. 이제는 피어싱 많은 귀가 일종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고 나만의 개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면접을 보러 다니며 하나둘씩 구멍을 막아야겠지만.


  하지만 당분간은 이 귀를 그대로 둘 생각이다. 불완전했던 과거와 조금은 나아진 지금을 동시에 가진 피어싱 가득한 두 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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