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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Oct 17. 2021

별볼일없는 후회

별 시답잖은 고민


 퇴근길 버스. 차창 밖으로 도시의 모습이 빠르게 펼쳐진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도시 잔상을 따라 머릿속에 별 영양가 없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러다 문득, ‘아 나 왜 이렇게 살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보통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는 건 ‘기회’로 그려진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며 현재의 암담한 상황을 바꿔놓고야 만다. 설사 현재가 바뀌지 않더라도 여러 선택을 해보며 신념이나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결말이든, 과거로 돌아가서 보다 나은 지금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이건, ‘기회’가 맞다.


  그런데 만약 내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이 상황을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래서 무엇을 가장 바꿔놓고 싶은가,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버스 하차벨이 서너 번을 더 울리고 나서야 겨우 답을 내릴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는 건, 적어도 내게는 ‘기회’가 아닐 것이다.




  “최고는 못해도, 최선은 다 한다.” 좌우명이라기엔 거창하고, 그냥 삶의 가이드를 잡아주는 일종의 표지판 같은 말이다. 많은 경우 저 말을 따르려고 했고, 그랬기에 꽤 많은 갈림길에서 제법 나쁘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고 믿었다.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어쩔 수 없어, 그게 최선이었거든”.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꽤나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워 보일 수도 반대로 비겁해 보일 수도 있는 말이다. 딴에는 열심히 살았다. 꾀부리지 않고, 책임감 있게 살려고 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이 만들어낸 선택지에서도 다시 고르고 골라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쉬면 불안했다. 다들 앞으로 가는데 못해도 제자리걸음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열심히 뛰려면 적당한 휴식이 필요한 , 잘 달리다가도 순간 넘어지면 잠깐 뒤처질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옆을 보거나, 바람을 느끼거나, 물을 마시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는 게 별 재미가 없었다.


  사는 재미를 그런 데서 찾아야 했는데 말이다. 옆자리에서 뛰는 선수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고, ‘너도 힘들구나’ 한 번 공감을 해준다거나. 혹은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제법 포근하고 동글동글하다는 걸 느끼거나. 갈라지는 목을 적셔주는 물 한 모금이 얼마나 반가운지 알았어야만 했다. 그래야 장거리가 가능했다.


  한 번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진짜 ‘고군분투’하면서 산다”라고. 그 말을 하면서 울었다. 내가 아니라 그 친구가. 그때 잠깐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넣어뒀다. 그 사실을 마주하기에 그때의 나는 약했고 겁이 많았다. 무엇보다 ‘최선의 선택’을 내려왔다는 함정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는 건, 적어도 내게는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확인사살’에 가까울 것이다. 아마 그때의 나는 지금 내가 돌아가서 멱살 잡고 좀 다르게 살아보라고 해도 고집을 피울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최선이야’라면서. 과거의 나는 굉장히 멋있게 저 말을 했겠다만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자면, 너무 고지식했다.


 ‘바뀔 여지가 없는 삶’과 ‘후회 없는 삶’은 다르다. 내가 바랐던 건 후자였지만 현실은 전자였다.  


  과연 예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대체 어떤 또 다른 최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최선에 최선이 더해졌지만 결과는 조금 엉망진창이다. 우연한 순간에 이 생각이 마음을 치고 들어왔고, 제법 괜찮게 굴러가던 내 인생에 제동이 걸렸다.


  이 모든 건 다 그 버스 밖에 펼쳐지던 도시의 잔상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 없이 평화롭던 시간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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