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질문.01
한동안 나를 깨 먹던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종종 내가 던지는 질문이 시의적절한 지 고민될 때가 있다. 맞춤한 질문으로 복잡한 상황이 풀리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질문에 현답이 돌아와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후자의 경우가 많았다. 결국 한동안 말 끝에 ‘?’ 다는 걸 굉장히 망설였다. 얕은 밑천이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말을 줄일수록, 부족한 점을 깨닫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늘 하던 생각, 편한 방식에 머무르니 시간이 흘러도 발전이 없었다. 그제야 어렵게 입을 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 궁금해하는 연습
문제가 생겼다. 오랫동안 질문을 하지 않다 보니 도무지 궁금한 게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 볼 때였다.
“궁금증도 연습으로 발달시킬 수 있어”
“... 그게 된다고?”
도무지 ‘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궁금증을 가지려 해 봐도 깜빡 잊기 일쑤. 그런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질문을 던지게 됐다.
“아 미친 건가, 왜 저래?”
조금의 분노와 함께.
1. 도서관 해프닝
도서관 출입문을 힘껏 당겨 열었던 어느 하루. 뒤에 사람이 와서 문을 잡아줬더니, 그 틈 사이로 쏙 빠져나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얄밉던지. 그래도 많이 바쁘겠거니 혹은 무의식적으로 지나갔겠거니 생각하고 불쑥 밀어 오르던 짜증을 가라앉혔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려 했다.
다음 날,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무거운 책을 들고 낑낑대며 문을 연 순간, 뒤에 사람이 오는 게 보였다. 문을 잡아줬더니 또 사이로 지나가던 이름 모를 그 사람... 더운 날씨와 무거운 가방. 반복된 상황에 대한 분노로 나도 모르게 조용히 읊조려 버렸다. “아 왜 저래 진짜?” 순간 놀라서 입술을 헙- 하고 깨물었다.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아씨, 들었으면 어쩌지?’.
2. 등장, <?>
그날 유독 짜증이 오래갔다. 결국 오래간만에 일기를 썼다. 그러다 깨달은 점 하나.
‘오늘 질문을 2번이나 했네?’
물론 건설적인 물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말 끝에 ‘?’가 붙은 순간이었다.
3. 너트엔 볼트, 질문엔 답
그날 나는 유달리 짜증이 많았고, 쉽게 화를 냈고, 그 끝에 왜?라는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문을 잡아주던 당시의 질문은 모두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 상황이기도 하고 더욱이 그 사람을 찾아내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오늘의 질문에는 스스로 답을 해야 했다.
“나는 오늘 왜 이렇게 쉽게 화를 냈을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봤다. 유독 더운 날이었고, 손에 든 짐도 무거웠다. 과연 이것뿐일까? 잠깐, 그때 내가 들고 있던 책이 뭐였더라? 그래 맞다, 무거운 토익 책과 아이패드였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하나의 답으로 귀결됐다.
얼마 전 봤던 토익 시험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른 공부를 하느라 미처 신경을 못 쓴 탓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시험이었는데 ‘다른 공부’를 핑계로 원하는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이 내심 속상하고 아쉬웠다. 그러니까, 그날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언짢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사소한 일을 계기로 짜증이 폭발한 것이었다.
4. 사소함의 끝
사소함의 끝에는 나의 지금이 있었다.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뭐든 되어 있겠거니, 다시 시작한 취준을 내심 가볍게 생각했던 탓일까. 예상대로 시험 점수가 나오지 않거나, 예상외로 전형에서 일찍 탈락할수록 불안해지고 예민해져 갔다. 다만,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티 내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 쌓아둘 뿐이었다.
취미가 많아 적절히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내 상태를 잘 몰랐다. 어떤 지점이 불편한지 알고 취미에 임했더라면 고민을 털어내기 훨씬 수월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애매모호하게, 어딘지 모를 불편한 기분만을 비워내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해소가 안됐던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취직이 해결해주겠지만...)
5. 질문의 끝
오랜만에 던진 질문의 끝, 뻔하고도 뻔한 답을 얻었다. 그래,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의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결국 외부 자극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얼레벌레 돌아가는 개복치 인생. 쉽지 않은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 자주 스스로를 돌아보고 받아들일 건 인정하며 지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건, 대단한 자기 계발이나 멋진 교훈을 주는 잠언서가 아니라
그냥 나의 사소한 생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