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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Feb 09. 2024

장욱진_내가 나였던 시절의 얼굴들

'까치집(1977)' 그리고 '자화상(1951)'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 자연 속에서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자화상의 변辯>(1979)




[좌_나무와 새 (1957) /  우_나무(1987)]


'오'하다~ '와'하는 마음들


‘나무와 새’(1957)는 해와 달이 처음 등장한 장욱진의 작품이다. 하지만 해와 달은 자그마하게 그려졌을 뿐 커다란 나무가 캔버스를 채운다. 나무는 어린왕자의 지구 같고 초록색의 풍선 같기도 하다. 나무 안에는 아이가 보인다. 너른 초원이나 나무 그늘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는 우리 모두의 추억 속 유년이다.


이 그림은 거꾸로 봐도 무방할 듯한데 뒤집어서 본 그림 속 아이는 하늘을 날고 있다. 그럼 커다랗게 둥근 나무는 아이가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이겠다. 집들은 나무에 가려 저처럼 작게 보이는 것일 테고. 아래에 있는 새가 나무보다 크게 그려진 이유도 알겠다. 아마도 아이 곁에서 나란히 날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무와 새'를 보고 있는 동안 몸 안에 헬륨이 가득 찬 듯 붕 뜬 기분이 든다. 이런 몽콜몽콜한 감정은 까마득하다. 아련한 기시감을 어른이 됐다는 증표로 받아들이기는 또 좀 억울하고. 그래서 장욱진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동화처럼 선과 면으로 간결하게 형태를 표현한 방식이나 해와 달, 나무와 새처럼 다정한 등장인물들은 친숙하고 다정해서 그림 읽기가 어렵지 않다. 또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안의 아이가 서서히 깨어난다. 잊고 지낸 마음들, 내가 나였던 시절의 얼굴들.


초등학교 수학여행단과 제주행 비행기를 같이 탄 적이 있다. 비행기 안은 들뜬 아이들로 떠들썩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에게 달려가면 선생님이 와서 주저앉히고, 선생님이 멀어지면 다시 승무원이 달려오는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이륙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이동하자 비로소 조금씩 잦아들었다. 다만 적막 속에도 조잘거림은 그치지 않아서 옆자리 아이들의 속닥임이 가까이 들렸다.


“영진아!”

“왜?”

“나 떨려.”

영진이가 앞만 보며 친구에게 대답한다.

“나도 비행기 처음 타.”


[좌_까치 (1958) /  우_까치집(1977)]

     

까치와 나무와 나


‘나무와 새’(1957)를 보고 '얼굴'(1957)을 보고 다시 '까치(1958)'를 보는 동안, 처음 비행기를 타며 ‘오~’하다 ‘와~’하고 감탄할 줄 알던 그날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우리에겐 어김없이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까치집’(1977) 앞에 멈춘다. 장욱진 화가가 덕소 화실을 떠나 서울에 머문 지 2년 남짓 지난 시점에 그린 그림이다. 그는 이 시절 자주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 ‘깨끗한 새벽녘 문밖의 키 큰 나무에 매달려 있던 까지집과 까치’를 그림 그림이 ‘까치집’이다.


이제껏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은
덕소 생활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서울의 소음에 적응하기를
아직 내 자신이 완강히 거부하기 때문일른지도 모른다.  


이토록 천진한 아름다움을 그린 그 또한 보통의 사람이어서, 어떤 갑갑함은 견디기가 쉽지는 않았나 보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된다. 우리가 레토르트식품으로 허기를 채우듯 스카이스캐너를 뒤적여 오늘의 저가항공을 찾는 건,  어쩌면 살아있다는 살아보겠다는 발버둥일지도. 


[좌_장욱진 화가의 사진 / 가운데_'기도(1988)' / 우_'자화상(1951)]


오늘의 나는 지금의 나를


'까치집' 속 남색의 하늘과 달은 새벽녘이다. 사위가 어스름한 새벽은 아이보다는 어른의 시간이다. 어른들은 새벽에 깨어서 아득한 근심에 쌓이기도 하고 때로는 막연한 그리움에 젖어들기도 한다. 어느새 첫 여행은 끝이 나고 익숙한 것들 속에서 우리는 이만큼 나이를 먹어버렸다. 밥숟가락을 든다는 게 밥벌이의 무거움이란 걸 알아버렸다. 이 새벽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일까?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던 미래가 지금의 나인가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없다. 장욱진 작가는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가 되면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한자리에 평생을 뿌리내려 산 나무도 한참의 시간이 걸려서야 자신을 찾았을 거라,고.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볼 때면 설령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 없다 해도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바람이 생겨난다. 오늘은 오늘의 달이 뜨듯,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뜰 테니까. 오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너무 나무랄 필요는 없겠다고.







※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2024년 2월 12일(월)까지 열립니다.

※ 경기도 양주시에는 장욱진미술관이 있습니다. 상설전시실에서 《새벽의 표정》(2024년 8월 18일까지) 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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