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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Feb 16. 2024

에드워드 호퍼1_여행이라는 백미러 속 세계

사우스트루로와 나이트호크(1942)

어쩌면 나는 인간이 아닐 수 있다.
내가 원했던 건 집 한켠의 햇빛을 그리는 것 뿐이다.

Maybe I am not very human - all I ever wanted to do was to paint sunlight on the side of a house.”


[도로와 집 사우스트루로, Road and houses, South Truro,1930~1933, 에드워드 호퍼, 휘트니뮤지엄 소장]


여행할 때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


아내와 저는 종종 호퍼와 조세핀처럼 여행합니다. 가끔은 여행작가의 출장이기도 한(대부분인가?). 여주, 나주, 음성, 의성 이런 지역으로 떠나죠. 아내는 창밖으로 한갓지고 아름다운 풍경이 지날 때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살고 싶어. 우리 이사 올까?”


그때마다 집을 옮겼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살아봤을 겁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아내가 원하는 마을에서 제법 오래도록 머물러보고 싶습니다. 여유가 생긴다면 호퍼와 조세핀처럼 별장이라도 짓고 싶네요.


호퍼는 아내 조세핀과 자주 함께 여행했습니다. 기차로 미국을 횡단하고, 중고차를 사서는 미국과 멕시코 등을 여행했죠. 1930년에는 케이프코드 사우스트루로에 있는 우체국장 벌리 콥의 집을 빌려 머물며 여름휴가를 보냅니다. 두 사람은 이 기억이 무척 좋았나봐요. 1934년에는 사우스트루로에 스튜디오를 겸한 자신들만의 별장을 마련합니다.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먼 집들, Cobb's Barns and Distant Houses, 1930~1933, 에드워드 호퍼, 휘트니뮤지엄 소장


어둠 가운데 초록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르로’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먼 집들’ ‘도로와 집, 사우스트르로’ 등은 1930~1933년 사이 그린 그림입니다. 호퍼와 조세핀이 벌리 콥의 집을 빌려 사우스트루로를 여행하던 시절입니다. 저는 이 목가적인 그림들이 ‘나이트 호크’와는 다른 호퍼를 보는 것 같아 신선합니다.


가까이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걸 보면 집 뒤편 언덕에서 밑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그림 안에는 벌리 콕의 집과 초록의 대지, 구릉과 구릉, 그 너머의 작은 집들이 보이네요. 호퍼의 짙은 그림자는 이 그림에도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초록이 굳건한 농촌 풍경은 하릴없는 희망을 품게 합니다. 이 시절의 호퍼는 조금은 밝은 쪽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물론 도시화로 인해 버려진 농토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호퍼의 어둠은 초록 가운데도 보이니까요. 하지만 삶이 죽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죠. 우리의 인생은 그 여정의 짧은 안도 또한 의미가 있어요. 설령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호퍼를 좋아하는 걸 겁니다.  


[나이트호크, Nighthawks, 1942, 에드워드 호퍼,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나이트호크 속의 사우스트루로


사우스트루로 이후 호퍼의 그림은 시간을 거듭하며 발전합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일상의 묵묵한 단편은 그의 상상이 더해져 하나의 새로운 장면으로 완성됩니다. 그 숨은 경계가 보는 사람들에게 호퍼의 쓸쓸한 도시 풍경을 느끼게 하죠.


그 대표작이 바로 '나이트호크'(1942)고요. 그림 속 바는 쓸쓸함이 묻어나지만 낭떠러지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요. 바의 유리창 하단부 검은 어둠 위로 한 줄의 초록색이 지나는데 사우스트루로의 초록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그보다는 밝은 빛의 초록이죠. 그로 인해 이 그림은 조금은 희망적이기도 해요. 절망보다는 고독이, 일상보다는 여행의 고독이 떠오르고요. 혼자이고 싶지만 또 같이하고 싶은 양면의 마음, 여행에서 작은 바나 이자카야를 찾는 건 그런 모순이 연출하는 우연의 사건을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 Burly Cobb's House, South Truro, 1930-33년,  에드워드 호퍼, 휘트니뮤지엄 소장]


여행이라는 백미러 속 세계

다시 사우스트루로의 그림입니다. 호퍼의 지인이자 휘트니미술관 관장이었던 로이드 구드리치는 ‘여행에 대한 호퍼의 몰두는 꽤 의식적이었다. 호퍼는 운전할 때 그림 주제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전합니다. 호퍼처럼 차에 앉아 백미러를 보면 그의 말이 엉뚱하게 이해가 갑니다. 보통 자동차 백미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가끔은 ‘사물’에 다른 단어를 대입합니다. 예를 들면 영감이나 통찰 같은. 그런 것들은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압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할 뿐. 우리는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지요. 호퍼도 그랬을지 몰라요. 떠나야만 볼 수 있는 세상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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