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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May 30. 2020

믿음의 연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년 05월 21일 목요일

날씨

구름이 조금 낀 날. 또 덥다.

<왕좌의 게임> 버전으로

'summer is coming' 이라 적고싶은 날.

<출처: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홈페이지>



저녁 9시에 맞춰 서둘러 집으로 온다.

오늘은 20분 늦었다.  근래 몇 주 동안

목요일은 <슬기로운 의사생활>를 보는 날이다.


오늘은 마지막회다.

매회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오늘은 양석형(김대명)의 산부인과 진료 장면에서

이 드라마를 보는 내 마음 속 ‘믿음’을 확인한다.

  

양석형의 진료를 받은 한 산모가,

뱃속의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산모는 의사 앞에서 40분 동안 오열한다.

옆에 있던 레지던트가 대기 중인 산모들에게

양해를 구할까 하고 묻는다.

양석형이 말한다.

‘괜찮다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대기실에는 산모들이 있다.

아이를 잃은 산모의 울음은

진료실 밖의 그들에게도 들린다.

카메라는 산모들의 배를 차례차례 비춘다.

누구도 항의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 장면이

‘내 불행이 아니라 다행하다’는 마음이 아닌

그 슬픔을 알 수 있는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연대,

담담한 침묵의 위로 같다.

     

병원에서 슬프고 불행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한 동안 병원 가는 게 두려웠다.

간신히 봉합한 마음의 상처를 헤집어놓을 것 같아서


<슬기로운 의사생활>를 보는 내내,

아픈 사람이 꼭 나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극중 의사들이 희망을 놓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은,

어딘가에는 저런 의사가 있어,  

저런 병원이 있어,

누군가는 울다가 웃을 수 있고

누군가는 불행을 넘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드라마 속 '가짜 증거'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한 희망이다  

믿을 수 있어 믿는 마음이라기보다,

존재한다 믿고 싶은 마음으로서 믿음.

그래서 누군가

‘저건 판타지야  저런 병원이 어딨어?’

라고 말할 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괜찮다고.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러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그것이 <슬기로운 의사생활>를 보는 내내

내 마음에 자리한 동병상련의 마음,

그 뿌리가 되는 슬픔에 대한 연대감이다.

슬기롭다는 건, 그런 것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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