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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30. 2022

집이라는 다행한 계절


이삿날이었다. 이삿짐 차가 떠난 후, 내게는 옛집이 될 그 집에 들어갔다. 집과 인사라도 나누자. 그 집은 이웃 건물과 50cm 간격을 두고 골목 안 경사지에 위치했다. 층수는 1.5층 같은 2층이었다. 집 안은 반지하처럼 어두웠다. 창은 세 개가 있었다. 주방 남쪽 쪽창은 열리지 않은 고정형이었다. 유일한 남향이라 간신히 빛이 스며들었다. 방에는 북쪽과 서쪽으로 두 개의 창이 있었다. 어느 쪽이든 창을 열면 옆집 담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무더운 여름날에는 길 잃은 바람 한 줌이 무심하게 불어들기도 했다.


그 집은 지하철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였다. 갈림길을 세 번 지나 집 앞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가끔씩 행복했다.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그러나 사람의 보행이 더 많은 골목에는 미용실, 치킨 집, 세탁소, 과일가게, 중고가전제품 판매장 등이 줄이었다. 나는 골목 미용실에서 커트를 했고 치킨 집에서 가끔씩 양념치킨을 배달해 먹었다. 중고가전제품 판매장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이웃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때마다 잠깐씩 동네라고 느꼈다.  나는 종종 마지막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모퉁이 2층 단독주택은 밖에서 보기에 정원이 예뻤다. 계절마다 색색의 꽃과 나무가 담을 넘었다. 특히 라일락 향을 맡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5월은 제법 ‘희망’적이었다. 

그 집에서 이웃과 따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다. 어쩌다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라기보다 외면하기 좋은 방법이었다. 아래층 사람과 딱 한 번 말을 섞은 적이 있다. 제법 긴 출장을 다녀온 겨울이었다. 그 사이 발목까지 눈이 쌓였다. 집 철제대문은 층계참에 쌓이고 녹기를 반복한 바닥의 눈얼음과 붙어 열리지 않았다. 근처 공사장에서 벽돌 하나를 가져와 얼음을 깼다. 곧 아래층에 사는 이가 올라왔다. 그는 사정을 확인하고 말없이 돌아갔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는 물 끓인 주전자와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놓고 갔다. 돌아보면 그런 날들이 있었다. 집이 내게 투정부리듯 말을 걸어온 날, 동네가 나무라듯 친절을 베풀던 날, 나만 알아듣지 못했던 날.


그 집에 이사와 이삿짐을 풀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예정보다 오래 살았다. 새 직장을 얻고 여행 일을 시작했으며 두 번 연애했다. 그녀들은 각자의 물건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다시’라고 말하며 기운을 내다 ‘역시’하며 움츠려들곤 했다. 그 후로 출장이 더 잦았다. 부러 떠났다. 일주일 가운데 절반은 집밖에 있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나는 그 집 대문에 서서 모든 것이 빠져나간 빈 집안을 살폈다. 집 안 창문은 모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그래봐야 열릴 수 있는 창문은 두 개 뿐이었지만. 집에 벤 꿉꿉한 냄새(내 몸의 것이었던)가 얼만큼은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이제 살던 사람이 떠난 집, 며칠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을 집이 될 테지. 중고 냉장고가 시끄럽게 돌아가던, 무질서하게 어질러진 책상이, 작고 좁은 옷장이, 내 삶의 지난 4년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작은 집 안을 돌며 구석구석 인사했다. 

‘덕분에 잘 지냈어. 너도 잘 지내.’


제일 오래 머문 건 방안 안쪽 벽 앞이었다. 일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 벽에 기대 텔레비전부터 켰다. 채널을 바꾸다 지치면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고는 다시 비스듬히 누워 잠들 때까지 리얼리티 쇼나 영화를 봤다. 그것만이 위안인 양, 어떤 의식처럼, 그 집에 살며 매일같이 반복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그 흔적을 처음 보았다. 집안을 채우고 있던 모든 것이 빠져나가자 비로소 벽에 누런 얼룩이 보였다. 책상이 있고, 옷장이 있고, 텔레비전이 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내 뒷모습이 고스란하게 새겨진 자리. 오랫동안 침전물처럼 쌓인 벽지 위 얼룩은 내가 텔레비전을 보며 몸을 기대던 어깨 너비와 꼭 들어맞았다. 나는 이 집을 떠나려 하는데, 지난 4년의 나는 그 벽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곳은 내 집이었구나.’

그 집을 한 번도 내 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집은 사는 내내 정거장 같았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머무는, 어딘가가 될 수 없는 장소. 그 집은 그런 의미였다.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가는 시간. 그렇지만 더는 살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그 집은 내게 ‘내 집’이었다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잘 살아가라고. 네 몸에 붙은 그림자는 이곳에 내려놓고 네 삶을 살아가라고. 

나는 그 벽의 얼룩을 보며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불러보았다. 나는 그 벽을 보며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 하나씩을 또박또박 불러보았다. 나는 그 벽을 보며 ‘엄마’하고도 불러보았다. 벽안에 내 몸이 있어 그 음성들이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리라 믿으며.


길 위에서는 많은 일들이 이유 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유 없이 떠나간다. 이유를 알 때 즈음에는 무심이 지나간 다음이다. 알 수 없는 슬픔이나 알 수 없는 희열이나, 알 수 없는 행운이 그렇듯, 내 것 같지만 실은 내 의지와 무관한 사건이 더 많았다. 도시의 뒷골목 숙소에서 창밖으로 시끄러이 지나가는 낯선 목소리에 뒤척일 때면, 겨울 산속에서 몸을 움츠려 시린 눈 위를 비벼 걸을 때면, 홀로 물끄러미 밤바다를 보다 눈을 감고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그날 그 집에 남아 있을 내 몸의 얼룩이 떠오른다. 빌딩과 자동차는 생활의 세계이고, 별과 달은 여행의 일상일 것 같지만, 집으로 돌아와 여행 가방을 풀 때 즈음에는 다시 생각한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게 집은 얼마나 다행한 계절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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