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석 Sep 23. 2019

진정성 있는 삶

고민(1)

문득 진정성 있는 삶이란


나에게 초점 맞출 때 가능한 삶인가? 

아니면

타인에게 초점 맞출 때 가능한 삶인가?


혹은,


나에게 솔직한 것에 기반한 것일까 아니면

타인에게 솔직한 것에 기반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사실 진정성 있다는 말 자체를 공식처럼 딱딱 이럴 때 가능한 것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말랑말랑한 단어다. 마치 구름처럼 형태는 분명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 잡으려면 잡히지 않는 것처럼.


지만 근본적으로 진정성 있다는 은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사회'라는 집단 내에서 규정 가능하다는 생각.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나 스스로 규정하는 것은 주관적 의미에서 평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타인이 존재할 때, 다시 말해 타인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삶 가운데 놓여 있을 때 판단 가능한 단어 싶다.


진정성 있게 산다는 것은 나 자신이 나의 삶에 집중했을 때 실현 가능한 단어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낸 삶에 대해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을 때 판단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


그렇다고 타인에게만 초점 맞춘다면 그 삶은 진정성 있는 삶이라기보다 정성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삶에 가깝다.


진정성 있는 삶 자체를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진정성 있는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건가?

의식하지 않고 살아내야 곧 진정성 있는 삶인가.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기반한 노력 자체가 진정성이라는 진실한 의미에는 다가설 수 없는 모순적 욕망인가?


결국 그 중간 언저리 어딘가에 있는 것이 진정성 있는 삶.


규정할 수 없고 온전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짝사랑과 같은 진정성 있는 삶.





매거진의 이전글 옳고 그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