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견디기만 하면 다 될 줄 알았지.
"가해자와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고요?"
"네. 중학생 때도 같은 학교였는데, 대학교 와서 얼굴을 보니 알아보겠더라고요."
몹시도 더웠던 2019년 여름. 상담사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봤던 게 선명하다. 그야 그렇겠지. 나조차도 동일인이라는 걸 확신하고 절망감을 느꼈을 정도니까. 닮은 사람을 본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가해자는 내게 피해가 시작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몸집이 위협적으로 컸고, 세모꼴로 된 눈매를 하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에 오만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인문대학 소속이었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잦았으므로 나도 여러 번 얼굴을 보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내가 상담을 받은 횟수는 가해자가 나를 괴롭히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그리고 대학교 3학년이었다. 마지막 시점에서는 가해자도 내게 흥미를 잃은 것인지 아니면 알아보질 못한 건지, 본인도 떳떳한 과거라고 생각한 건지 내게 말을 걸지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마주치게 되면 흡연존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나를 조용히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학교폭력을 당했던 과거를 설명하는 게 굉장히 담담하네요. 보통 상담을 진행하면 울거나 감정을 폭발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가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생 시절. 교내에 있는 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을 때, 내가 겪었던 일들을 일부분 털어놓고 나서 상담사가 그리 말했다. 나는 그러냐는 맹숭맹숭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 마음은 앞선 두 차례의 실패로 파도에 깎여져 나간 것처럼 상담에 기대도 없는 상태였다. 겪은 일 전체를 털어놓지 못한 것도 상담시간이 한 시간 남짓이라는 시간상의 이유도 있거니와 상담 자체가 나를 바꿀 거란 기대가 없었다. 상담을 가보자고 결심한 것도 기가 막힌 이유였다.
상담을 하기 전에 무엇이 고민이냐는 설문지에 나는 '성격적인 결함을 알고 싶다'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교통사고로 트럭에 치였는데 내가 치인 게 맞는지 물어보는 꼴이랄까. 휴학을 하기 전에 나는 하혈을 하고 감기를 달고 살 정도로 무리한 스케줄을 감행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리한 게 맞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나에 대해서 몰랐다. 그렇게 나는 3학년을 끝내고 나서 성격적인 결함을 찾겠답시고 1년의 휴학신청서를 냈다. 휴학신청서를 제출할 때 사유도 조교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아프다고 병결휴학 하면 취업할 때 불리하다고 하니까 경제적인 사유로 휴학했다고 해야지.'
내가 재학하는 대학교는 등록금이 저렴하다는 국립이었을뿐더러, 장학금 혜택도 정말로 많았다. 그러니 경제적인 사유로 휴학을 한단 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내게 반년 휴학도 가능하니 마음이 바뀌면 다시 찾아오라는 말만을 할 뿐이었다. 내 흉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으니 그런 배려 아닌 배려가 고마웠다.
대학교는 우리 집에서 버스로 2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어릴 적부터 키워온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 맞춰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타 지역으로 가는 것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를 선택했다. 그래서 가해자도 같은 학교로 진학했을 줄은 몰랐다.
어릴 적부터 성인까지 트라우마에 짓밟히는 와중에도 내가 소중히 간직했던 꿈. 그건 작가였다.
그리고 결국에 나는 그 꿈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다고 볼 수 없었다. 만일 과거의 나에게 한 번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소심하고 내성적인 어린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너무나도 아프고 쓰라리지만 괜찮을 날은 반드시 온다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날이 다가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