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환자에서 웹소설 작가가 되기까지.
사실 모든 문학은 읽는 타겟층을 정확히 노리고 써야 한단 걸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웹소설은 철저히 상업소설이니 작가가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일념이 강하다. 소위 말하는 유치하다고 볼 수 있는 클리셰들이 그 부산물이다. 그러나 그 클리셰들은 작가들이 치열하게 독자들의 니즈를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내놓은 대답이었다. 실제로 읽어보고 써보니 그들의 노고를 알 수가 있었다. 어릴 적에는 클리셰가 아니라 무조건 참신함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문학은 읽는 독자들에게 '어그로'를 잘 끌어야만 했다.
웹소설은 유난히 역사가 짧을뿐더러 어그로를 끄는 게 두드러졌을 뿐이었다. 국어국문학과생으로 있으면서 전근대문학을 읽어보니 우리 시대엔 명작이라고 했던 것들이 그 시대에는 이단이자 대단히 파격적인 작품이었던 걸 아니 더욱 그렇다. 내 목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스피커폰으로 웹소설을 택한 건 요즘 흥하는 장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크다.
공황장애가 발생하고 바깥에 활동하는 것에 제약이 생겼다. 이동수단을 타거나 청각이 과민해서 사람이 많거나 소란스러우면 오래 버티질 못했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탄 지 10분 만에 내리고 패닉이 왔고, 어느 날은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 갔는데 반사적으로 출입구 위치를 찾고 기억했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서 필요시 약을 먹고 누우면 멀쩡해졌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니 부모님께서도 고심했고, 나 역시 '공황장애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면서도 내 목소리를 전파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
그게 웹소설 작가였다. 30곳의 출판사를 리스트업 하고 초고를 투고했다. 그런데 무려 27곳이 원고를 반려했다. 많이 추려냈다고 생각했는데 반려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나머지 세 곳 중 두 곳은 출간계약서에 대놓고 독소조항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문체부 표준계약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법률상 문제가 있는 조항을 조목조목 항의하고 빼거나 수정해 달라고 했더니 '우리 출판사와 계약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라고 투고 합격을 취소해 버렸다.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계약에 눈이 멀어 섣불리 저지르면 더한 고통이 수반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작품 초고는 버리고 두 번째 작품 초고를 한창 쓰고 있을 때. 메일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XXX 팀장입니다. 자사에 보내주신 원고 흥미롭게 살펴보았습니다. 괜찮다면 미팅 가능하실까요?"
아직도 그때를 기억한다. 당시 나는 두 번째 작품을 쓰다 지쳐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별다른 기대 없이 메일함을 열었다. 그러다 투고에 합격했단 메일을 보고 뱀 보고 놀란 고양이처럼 침대에서 번쩍 뛰었다. 반려가 습관이 되면 길고 긴 쿠션어를 지나서 본론만 보게 되는데 내가 그랬다. 이 메일도 길고 길었다. 결론을 보기 위해서 맨 밑을 봤더니 '원고가 좋으니 한 번 미팅하죠!' 이거였다.
하지만 앞선 두 개의 출판사가 가계약서로 독소조항이 첨부된 계약서를 내밀었기 때문에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도한 척 굴면서 우선 가계약서를 보겠다고 빛처럼 빠른 속도로 답장했다. 답장은 늦지 않았다. 나는 어려운 전문용어를 살피면서 꼼꼼히 체크했다.
그 출판사는 아무런 독소조항도 없었다. 계속 체크해 봤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무런 작품도 출간하지 못한 내게 선인세까지 얹혀주겠다며 유혹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계약을 수락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팅은 거절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