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계절 속에서 너만이 빛났다.
고백할 것이 있다. 어떤 기억은 떠오르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러워 아예 백지화가 된 것이 있다. 하지만 어느 기억은 지금까지 악몽을 꿀 정도로 선명하게 상영되는 것이 있다. 이 날도 그랬다. 먹는 약이 모자라서 바꾼 병원으로 간 그날.
의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목숨을 끊을 것을 결심했다. 기억하기로는 중학교 1학년 때 느꼈던 감정과 결이 비슷했다. 어른도, 아이도 가해자였던 교실 카르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사로부터도 2차 가해를 받았다. 그때 대화를 나눴던 기억만이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허무맹랑하게 들리겠지만 그 기억만큼은 지금도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건넨 한 마디가 트리거를 건드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4년 간 이어진 폭력도 마찬가지였다. 회고하기를, 내가 당했던 모든 폭력들은 저 정도는 분명히 일부였다. 방어기제인 건지 그게 아니면 너무 괴로운 기억이라 떠올리기 싫은 건지 모른다. 확실한 건, 그 4년을 버티고 버틴 나는 만신창이였다.
그 가면극은 대학생이 돼서도 지속됐다. 그러나 곪아터진 상처를 숨기는 건 이제 한계였다. 어른이 되니 트라우마를 숨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민들이 뒤따라왔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와 공황장애 그리고 고통뿐인 삶.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 이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을 스스로 단죄하기 위해서 목숨을 끊을 것을 결심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선택지로 존재해선 안 된다고.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삶이 오로지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으로 이분된 느낌으로 들린다. 삶이란 건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으로 구분되선 안 된다.
아무튼, 나는 평상시에 애용하는 사람이 없는 작은 스터디카페로 들어가서 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그 창문에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뛰어내리려고 하니, 이 건물이 고작 3층 밖에 되지 않아 지면과 너무 낮아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머리가 한 번에 으깨져서 죽는 것이었는데 그러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앞서 얘기했듯이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서 그다지 높은 빌딩이 없다. 15층 이상이 되는 아파트 단지는 대문 자체가 잠겨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최대 12층이었는데, 즉사할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건 미수로 그치게 된다.
나는 유서를 작성하고 나서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한 명한테 유서를 전송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 언니는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밤에 일하고 낮에는 자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그날따라 눈이 일찍 떠졌더란다. 내가 작성한 유서를 보고 깜짝 놀란 언니는 내 남자친구에게 곧장 연락을 했고, 남자친구는 내가 연락을 받지 않는단 걸 알고 회사를 조퇴했다. 그는 인터넷을 뒤져서 우리 집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고, 그렇게 우리 엄마와 연락이 된 것이다.
그 이후는 뻔했다. 엄마의 걱정과 애정이 섞인 잔소리와 함께 서로 끌어안고 오열했으며, 나는 진심으로 날 걱정해 준 언니에게 무사하다며 전화를 했다. 왕복 6시간 거리를 자차로 타고 온 그는 그저 사랑한다는 말만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분명히 더 무엇인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는 건 두 가지뿐이다.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따스한 온기와 사랑한다는 말. 그것들은 약으로도, 상담으로도 치유되지 못했던 상처를 보듬어 주었다.
그날 새벽. 그는 시간이 늦어서 숙소에 머물고 나는 본가로 돌아갔다. 하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사랑. 이타심. 카타르시스. 의심. 공포. 두려움. 불안감. 죽음. 삶. 희망. 복수.
어린 시절부터 평생 동안 내가 바라던 가치들은 바로 내 곁에 있었다. 죽어버렸던 심장이 두근두근 맥박 치는 게 느껴졌다. 평생 동안 등한시하고 묻어뒀던 그 감정들은 내내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들이 보인 것이다. 그것들은 내가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때, 나를 붙잡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짐했다. 빈 껍데기로만 살아가던 삶을 멈추고 이번 생은 다른 이를 위해 살아가겠노라고.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다른 이가 내게 가르쳐준 감정을 떠올리면서 살아가겠다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이라고.
그렇게 해서 나는 병원을 다시금 바꾸고 잊힌 꿈을 발굴했다.
내가 겪었던 경험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처럼 절망의 나선을 맴돌던 이들에게, 희망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직업은, 웹소설 작가였다.
사진 출처 : pixabay, we-o_rd35hpbmrqrc1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