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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원 Sep 21. 2024

죽는 줄 알았더니 공황장애였다.

결국, 스스로 괴물을 만들어냈다. 


"추워서 그런가? 혈압이 180이에요. 심박수도 너무 높고요."


정신과 간호사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런 간호사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황장애, 그 녀석은 대학교 4학년에 갑작스레 찾아왔다. 2020년. 그 해는 모든 청년들에게 잔혹한 시기였다. 외신에서는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여 프리징(Freezing) 현상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의 나는 무엇 때문에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는지도 잊어버렸다. 그저 적당한 회사에 다녀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청소년기의 트라우마 따윈 상담을 받은 대학생 시절에 다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상담사의 눈에도 1년 동안 고쳐야 한다는 강박감과 초조함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4년간 폭력에 노출된 후유증이 그렇게 말끔히 사라질 거란 착각을 하다니. 


아른거리는 트라우마, 멀쩡한 척 가면을 뒤집어쓰고 사회의 1인분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과거가 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람을 향한 의심.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나는 스스로 괴물을 만들어냈고, 초겨울 새벽녘에 갑자기 공황장애가 발생했다.





심장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쿵쿵거렸다. 평상 시엔 포근하게 느껴졌던 이불이 지금은 나를 옥죄어 왔다. 아침이 오면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서 핸드폰을 들고 증상을 찾아보았다. 해답은 간단히 나왔다. 첫 번째는 심장과 관련된 질병이거나, 두 번째는 공황장애 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두운 터널 속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극심한 공포. 그것으로 나는 공황장애라고 확신하고 당일진료가 가능한 정신과를 곧장 찾아보았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서 정신과조차 얼마 없었다. 의사가 어떤지, 약은 뭘로 처방해 주는지, 상담은 해주는지 그런 후기가 전무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정신과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아침을 기다리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난 죽는 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도가 있을까?


아침이 오길 기다리면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늪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감각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오전 8시가 되고 나는 시뻘건 눈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했다.


"거기 혹시 초진이어도 당일진료 가능한가요?"

"예. 가능합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돼요."


전화를 끊고 나는 곧장 정신과로 향했다. 그곳에서 스트레스 검사와 혈압과 심박수 측정기를 쟀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스트레스지수가 지붕을 뚫고 있었으며, 혈압과 심박수는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간호사가 나를 보면서 추위 때문에 혈압이 높게 나온 건지 의아하게 여겼을 정도니까. 


약은 잘 들으나 정신과 의사는 불친절했다. 갑자기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서 내 전공은 돈이 안된다느니 학벌을 가지고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멋대로 단정 지었다. 내가 지금 증상 상담을 하러 온 건지 그게 아니면 죄를 짓고 호구조사를 받고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에 나는 정신과를 바꾸고, 다른 정신과로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목숨을 끊으려고 할 줄은.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서 목숨이 구해질 줄은. 



이미지 출처 : pixabay, dimitrisvetsikas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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