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안녕하세요."
출판사와의 미팅을 거절한 이유는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너무 멀었다. 내가 사는 곳은 출판사가 있는 서울까지 고속버스 왕복으로 5시간은 잡고 가야 했다. 그냥 마을버스를 타다가도 패닉이 자주 왔던 시기였기 때문에 모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도 모처럼 출판사와의 미팅인데 하루쯤은 마음 잡고 시간 내서 갈 수 있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세 번째에 설명하기로 한다.
두 번째, 겁이 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기적인 투병생활로 인해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런 공적인 자리에 간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공황장애도 지금처럼 멀쩡히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가 되는 편이 아니었다. 이른바 '예기불안'이 심했다. 지금이야 예기불안을 이겨내려면 그런 장소도 가야 하고, 부딪혀봐야 한단 걸 알지만 당시 나는 외출할 때마다 필요시 약을 꼭 들고 가야만 해서 고민과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세 번째는,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웹소설 출판사는 전자계약서를 통해서 얼굴 한 번 마주 보지 않고, 목소리 하나 듣지 않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경우가 많다. 출간계획 역시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의하고, 계약서는 '가계약서'를 통해서 어떤 부조리한 조항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와 소통과 상의를 거치고 사인하면 계약이 완료된 것이다. 더군다나 계약을 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팅 자리로 가면 편집자의 수려한 말발에 넘어가 독소조항이 있어도 사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괴담 아닌 괴담도 돌았다.
이미 나는 앞서서 두 차례씩이나 출판사에 데여서 미팅할 마음이 없었다. 내 나름대로 신중에 신중을 더해서 가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방에 살아서 미팅은 어려울 것 같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미팅을 거절했다. 출판사 측에선 별말 없이 수긍했다. 아무래도 거절을 한 두 번 당한 게 아닌 듯싶었다.
출판사가 건넨 가계약서에는 독소조항도 없고, 신인인 내게 선인세도 준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출판사와 내가 나눠가지는 비율도 평균이었다. 모든 걸 확인한 나는 사인을 했고 편집자와 본격적으로 네이버 시리즈 심사를 준비했다.
나중에서야 출판사들은 미팅을 좋아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당장 브런치를 봐도 출간제안을 받고 출판사로 찾아가거나 식사를 대접받았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팅을 했더니 출판사와 대화가 원활하게 풀려서 인세를 높이거나 선인세나 계약금을 조금 더 높게 책정받았다는 후기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건 웹소설 출판사도 마찬가지였다.
웹소설 편집자들은 출판사로 부르는 경우는 잘 없고, 법인카드로 좋은 식당으로 가서 미팅을 진행한다. 편집자들은 합법적으로 잠시 회사에서 벗어나 작가를 만나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때 당시 편집자가 내게 보낸 시그널은 이른바 '그린라이트'였던 것이다. 메일에서도 원한다면 선인세를 더 높여주겠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때 거절하지 말걸'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의사 선생님도 예기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은 회피가 아니라 부딪히는 법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를 어떻게 잡겠는가. 이미 계약도 했고, 출간도 했으니.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났다.
선인세가 한 달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사진 출처 : pixabay, Now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