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나도 선인세가 들어오지 않자 메일을 보냈다. 답장을 기다릴 동안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깜빡하신 걸까. 뭔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나. 미팅을 나가볼걸. 이렇게 메일을 보내도 괜찮은 걸까. 계약서를 아무리 다시 살펴봐도 선인세는 계약일로부터 한 달안에 들어온다고 적혀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다행히도 편집자로부터 답장은 금방 왔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오늘 안으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진 못했다. 지금에야 저런 답장이 날아오면 어째서 늦은 거냐고 이유를 물어보겠지만, 그때는 뭔가 내부적으로 사정이 있겠거니 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주긴 준다니까 그러려니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무렵, 핸드폰에 선인세가 입금이 됐단 은행 알람이 뜨자 그제야 한 시름 놓았다.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편집자는 비즈니스적인 사람이었다. 이미 선인세를 주는 기한을 넘긴 시점에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예민한 내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친절하고 세세하게 답변해 주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면 열심히 봐주면서 글의 완성도를 조금씩 높여갔다.
나중에는 명절선물이라는 걸 처음 받았을 때는 괜히 어깨가 으쓱여졌다. 아르바이트생들도 받아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자체가 없었다. 자존감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아직 집필 중인 내게 선물을 준 출판사를 보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아 이런 거 괜찮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엄마한테 처음으로 받은 명절선물을 주었다. 출판사에서 준 건 홍삼세트였다. 부모님은 출판사에서 이런 것도 주냐며 신기해했다. 아빠는 홍삼세트를 들고 가서 피곤할 때마다 마시겠다고 좋아했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들이 나한테는 자존감을 채워주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즐거웠다. 편집자와 상의하는 과정도 즐거워서 하루는 메일함을 뚫어져라 본 적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공황장애가 좋아지고, 타자를 두들길 때마다 공황을 겪어본 적이 없는 걸 두고 증상 호전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원래 글쓰기 자체가 공황장애에 좋다고 하셨다. 다른 작가들은 나오지 않는 성적을 보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심사고를 네이버 시리즈에 제출했을 무렵,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네이버 시리즈 편집부로부터 심사 합격을 받았으니 봄에 출간을 한단 소식이었다. 딱 좋았다.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에 내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완결이 다가올수록 힘들었지만 보람찼다. 내가 담고자 하는 내용은 벼랑 끝까지 밀리더라도 어떻게든 희망은 있노라고. 인류가 가진 이타심이란 감정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클리셰를 활용해서 적었지만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나로부터 시작이 됐다. 두 인물 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속은 결핍과 트라우마로 엉망진창이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고 나서 나는 그 아이들을 구해주었다. 웹소설은 나를 위한 기록물이기도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러브레터였다.
웹소설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정석이었다. 그게 일종의 클리셰로 고착했다. 아마도 세상이 삭막해질수록 다들 꿈같은 해피엔딩을 다들 원했던 것이 아닐까. 메마른 세상 속에서 행복한 삶을 원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봄에 출간을 하고 나서 편집자로부터 고생했다는 메일이 나왔다. 나 역시 편집자님도 고생했다고 메일을 보내주었다. 잘못하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묻힐 뻔한 아이들을 바깥으로 꺼내주는 데 도와주어서 고마웠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내 작품이 나올 때마다 흐뭇했다. 부모님은 필명을 알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건 거절했다. 언젠가 돈을 잔뜩 받아서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