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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May 13. 2022

산수유, 산봉우리, 바다 그리고 그대를 위한 기도

2022. 05. 13

  산수유를 닮은 빨간 입술을 가진 그대, 내 사랑하는 사람아. 이따금 그대 자신의 아찔한 색에 현기증이 날 때는 내게로 와 쉬어가세요. 그러면 저의 가슴을 쪼개 당신의 둥지로 내어드리겠습니다.     

 

  산봉우리처럼 우뚝 선 영혼을 가진 그대, 내 사랑하는 사람아. 길을 걷다 지칠 때는 내게로 와 쉬어가세요. 그러면 저의 그림자를 잘라 당신의 그늘막으로 내어드리겠습니다.     


  바다처럼 한없는 존재의 무게를 가진 그대, 내 사랑하는 사람아. 찢어진 옷을 기울 천이 필요할 때는 저의 살점을 가져가세요. 제게는 질긴 힘줄이 있어 살점이 없어도 상처 입는 법이 없답니다. 선율을 울릴 현이 필요할 때는 저의 힘줄을 잘라가세요. 제게는 튼튼한 뼈가 있어 힘줄이 없어도 스러지는 법이 없답니다. 집을 세울 들보가 필요할 때는 저의 뼈를 가져가세요. 제게는 뜨거운 심장이 있어 홀로도 영원히 멈추는 법이 없답니다.     


  다만 그대여. 손을 모아 이렇게 간청합니다. 저의 모든 것을 취해간다 하더라도 부디 고통만큼은 그러지 말아주세요. 만일 제가 그대의 떫은 입술에서 고개를 돌린다면, 그대의 가파른 영혼에 오르기를 주저한다면, 그대 존재의 무게를 함께 지길 거부한다면, 저는 무엇으로 그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피 흘리지 않는다면 장미는 무엇으로 붉은 잎을 틔울 수 있을까요? 우리가 눈물 흘리지 않는다면 바다는 무엇에서 푸르름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대여, 내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나는 그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대가 삶에 상처받기를. 그대가 사랑에 아파하기를. 신이 그대에게 선물한 축복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그대가 고통을 알아가기를! 그리하여 새벽이슬의 냉기를 마시고 피어나는 꽃잎이 될 수 있기를. 낡은 부리를 부숨으로 죽음을 떨치고 비상하는 매가 될 수 있기를. 그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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