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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n 27. 2022

모순의 순수

22. 06. 27

  머리는 하늘의 천국을 향하고, 다리는 땅 밑 지옥을 향해 뻗은 것은 무엇인가. 우주의 독백으로 기화한 언어가 재판관으로 응결하여 내게 판결을 내렸다. 그는 단호한 망치로 내 해골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것은 인간, 바로 너희 인간. 나는 보았다. 너희가 구원을 바라면서도 악을 행하는 것을, 만연하게. 가장 악한 순간에조차 선하다 여겨지기 원하는 것을, 터무니없게. 너희는 지옥의 열쇠로 천국의 문을 열려고 한다, 어리석게도. 하지만 나는 또한 보았다. 너희가 원수를 은혜로 갚는 것을, 기쁨으로. 추악한 악인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을, 눈물로. 너희는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다, 순결하게도.     


  머리를 맞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내게 재판관이 말했다. 너희 인간은 확신하는 머리와 충동하는 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혼란한 너는 이번에는 배로 이야기할 것이냐. 머리는 셈에 능하지만 오만하고 확신은 위태롭다. 배는 정력적이나 맹목적이어서 파멸을 가까이 둔다. 머리가 충동의 하수인 된 자보다는 확신으로 배의 목에 줄을 채운자가 낫다. 그러나 그러한 자 또한 온전치는 않다. 금욕은 부정한 사슬과 같아서 감긴 곳을 썩게 하고, 주인을 병들게 한다. 인간이여 왜소한 정신의 우리에서 내려오라, 탁한 충동의 격류에서 솟아오르자. 추락하고 상승하여 두 흐름이 하나 되는 곳에 머무르라. 그곳은 가슴, 영혼은 네게 속한 곳 중 가장 광활한 초원에 머무르기를 원하고 있다. 초원의 깊숙한 곳, 하얀 둥지 안에는 불타는 방아가 있나니 너희 영혼이 그것을 통해 삶의 붉은 즙으로 으깨지기를 소망하라.     


  너희 두 발 달린 것들아, 네 발 달린 것들의 순수를 숭배하라. 너희는 머리를 배 위에 두고, 배를 머리 아래 두게 하여 분란을 일어나게 한다. 그러나 너희가 짐승이라 멸시하는 것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몸에는 높이가 없다. 머리가 배를 누르려 들지 않고, 배가 머리를 끌어내리려 하지도 않는다. 구분이 없으니 그들은 몸 전체가 광활한 가슴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까닭에 살육해도 죄짓지 않으며, 상처 입어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하다. 인간들이여, 너희의 부분 중 가장 순수한 조각을 영혼이라 부른다면 온몸으로 그리한 저들을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천하다 하겠느냐.     


  너희 두 손을 가진 까닭에 그들과 같이 네 발로 살 수 없다면 굳건한 가슴으로 이렇게 말하라. 멀어버린 눈으로 생(生)을 낮이라 부르고 사(死)를 밤이라 부르지 않겠다, 빈곤한 도덕으로 선을 추앙하고 악을 벌하지 않겠다, 연인을 사랑으로만 부르지 않고 원수를 증오로만 여기지 않겠다고. 대신에 모든 것을 껴안고 시간을 들여 그것들이 익기를 기다리라, 너희 가슴 안에서. 그리하면 다가올 훗날 가슴이 활짝 열렸을 때, 너희는 춤추게 되리라. 삶의 미주(美酒) 그것에 흠뻑 취한 채, 아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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