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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May 10. 2022

기적은 하늘의 파랑, 노을의 빨강

가끔은 비의 젖은 입맞춤

기적은 하늘의 파랑, 노을의 빨강 가끔은 비의 젖은 입맞춤


  어젯밤, 거리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가로등 빛이 노오란 가슴을 부비고 있던 물웅덩이, 물기 먹은 자전거의 안장. 그날의 만남을 위해 비는 많은 것을 인내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강물을 거슬러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따금은 억센 고래의 지느러미에 하얗게 부서져야 했을지도 몰라요. 따가운 햇살에 몸을 불사른 그는 구름이 되어 붕 뜬 기분으로 세상을 방랑했을 겁니다. 하얗던 몸이 벼락에 물어뜯기고, 우박에 찢기고 나서야, 마침내 그는 저와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러니 그가 구정물을 뒤집어썼다 해도 제가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의 인내한 사랑을 위하여 우산은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늘에서 내리는 그의 축축한 입맞춤을 두 팔을 들고 껴안았습니다.     


  기적은 하늘의 파랑, 노을의 빨강 가끔은 비의 젖은 입맞춤. 저는 이따금 생각합니다. 만물에 충만한 기적과 기쁨과 환희를! 별빛에 새겨진 우주의 비밀을 읽을 수 있을 때,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에서 숨겨진 신의 계시를 들을 수 있을 때, 저는 문뜩 깨닫습니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은유라는 것을. 그때 저는 기도합니다. 내일도 사랑하는 것들의 숨결에 온기가 깃들기를, 떨어지는 꽃잎의 아련함에도 축복이 있기를.     


  음유시인이 되어 우주의 비밀을 탐구할 때 저와 그대는 시선이 마주치고, 이윽고 하나가 됩니다. 그 순간은 우주의 첫 반짝임만큼 강렬하고, 아찔합니다. 수억의 시간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우리는 만나게 된 것입니다. 무량(無量)한 선(線)의 바닷속에서도 우리는 만나고야 만 것입니다. 이 순간 전율하는 우리 운명의 현이 느껴지시나요?     


  그대와 찰나의 눈맞춤 속에서 저는 진정으로 눈뜨게 되었습니다. 아아, 이제야 그대가 보이는군요. 그대라는 영원한 질문이. 그대라는 싱그러운 비밀이. 그대라는 신의 은유가. 그대라는 이 시간, 이곳의 기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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