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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Apr 27. 2022

나무는 초록의 이름을 잊지 않는다

2022. 04. 26

  가끔은, 어항 속 고기가 되는 꿈을 꾸는 고래가 된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펜은 흐물거리며 손에서 미끄러지고, 책의 페이지는 투명해져 잡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만 의자에서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날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 자전거에 앉았습니다. 나침반을 잃은 항해사, 거리를 방황하는 유령. 동쪽의 끝까지 달려도, 서쪽의 길이 끊어지는 곳에서도 저는 낡은 어항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럴 때는 머리를 부딪혀서라도 어항을 깨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창이 꺾인 패잔병, 난파된 배의 조각. 제가 낡은 것을 부숴버릴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바람이 책상에 묶인 저의 발목을 어루만졌습니다. 바람은 노크 없이도 세상의 모든 창가를 드나듭니다. 바람은 날개 없이도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왼손으로 날개뼈를 더듬었습니다. 둔탁하게 굽은 봉우리가 느껴졌습니다. 제게도 언젠가 날개 없이 날아오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맥주 한 잔을 들고 카페의 2층 창가에 앉았습니다. 길 건너편에서 술렁이며 춤추는 나무가 보입니다. 보도블록 위 반의 반 평 땅이 나무가 가진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래도 나무는 흔들리는 춤을 멈추지 않습니다. 가지에 달린 수만 초록의 이름을 잊는 법이 없습니다. 저 또한 그럴 수 있을까요. 녹슨 굴레들에 입 맞출 수 있을까요. 그러면 그것들도 바람이 되어 날아오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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